[김유신의 공짜점심] 집값 잡겠다는 말
국민 자산의 70% 이상이 집에 묶여 있는 나라에서 부동산은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집값이 너무 떨어지면 국민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너무 오르면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 집값의 급등락은 선거에서 바로 표심으로 연결된다.
부동산과 정치는 밀접하게 연결되기에 부동산 실패는 곧 정치의 실패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 실패는 부동산 폭등의 결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지난 정부를 심판한 건 단순히 집값이 오른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년까지 집을 팔 기회를 드리겠다"(2017년 8월 3일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라든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는 정치인들의 말과는 반대로 시장이 흘러간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주변에서는 문 전 대통령을 믿고 집을 팔았다가 '벼락 거지' 신세가 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가 고의로 집값을 올렸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문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는 확고했다는 생각이다. 다만 경제 논리보다 이념에 충실했던 정책이 문제였다. 집주인에 대한 징벌적 양도세 중과는 거래를 틀어막고 가격을 더 높였다. 충분한 숙고 없이 통과시킨 임대차3법은 전셋값에 불을 질렀고, 집값을 끌어올렸다. 무능한 정부를 가진 대가는 집 없는 서민들에게 더 혹독했다.
최근 부동산이 다시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시에 집값을 언급했다. 원 장관은 "집값 하향 안정세가 더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오 시장은 "강남 집값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잠룡들이 일제히 집값을 언급한 걸 중도 외연 확장의 노림수로 보는 건 너무 비뚤어진 시각일까.
부동산 시장과 건설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시장 전반을 책임지는 국토부 수장이 집값 하향을 말하는 건 다소 위험하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7만가구에 육박해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다. 집값 하락은 분양 수요를 떨어뜨리고 건설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 현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전국 집값이 아닌, 수도권과 그 외 지역 간 격차 심화다.
원 장관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말한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좋은 정치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것,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연초 바닥을 다지고 반등을 시작한 건 특례론 출시, 대출 금리 상승 억제와 함께 국토부의 규제 완화가 주효했다. 정부의 연착륙 대책이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 건 자명하다.
운전자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면 승객들은 혼란스럽다. 원 장관의 말에 진의가 담겨 있는지 국민들이 헷갈리는 이유다. 재산권 침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연장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오 시장의 모습과도 대조적이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말(言)을 동원한다. 말의 진의는 뒤늦게나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market)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격은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정치인의 말보다는 시장 흐름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유신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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