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로 쓸까?
한 인간의 삶은 글의 영원한 샘물이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보고 정리해 기록하고, 인생의 한 시기를 건넌 후에 이를 가만히 살피고 찬찬히 돌이키며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이를 하나로 꿰어서 후세에 남긴다. 하루의 기록을 일기(diary)라 하고, 인생 한 계절의 이야기를 회고(memoir)라 하며, 삶 전체의 서사를 자서전(autobiography)이라 한다.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지와인 펴냄)에서 메리 카 교수는 "삶을 견뎌낸 사람에겐 누구나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을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순간순간 세상이 던져오는 변화무쌍한 질문에 답하면서 어렵게, 힘겹게 살아갈 뿐이다.
우리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건 과거를 되돌아보며 인생을 다시 쓸 때다. 카에 따르면, 한 사람이 지난날을 이해하려 할 때 우러나오는 순수하고 설득력 있는 서정성이 인생을 작품으로 만든다. 지나간 삶에서 시적 진실성을 찾아낼 때, 보통의 인생 경험도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마법 같은 이야기로 변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삶에서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면 열심히, 성실히 살아도 소용없다. 그저 공허할 뿐이다.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기록 여행의 첫걸음은 불꽃같은 감정이 일어서는 과거의 한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이 순간은 매우 특별한 인생 경험이겠으나, 반드시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사건만은 아니다. 언제나 소박한 진실이 화려한 거짓보다 더 힘세다. 삶의 갈피에서 약동하는 의미를 끄집어내 아름다운 노래로 들려줄 목소리가 있다면, 사랑과 이별, 일과 취미, 학습과 휴식 같은 일상 경험도 큰 가치가 있다. 이 여행을 이끄는 글쓰기의 가장 큰 동력은 솔직함이다. 꾸밈없이 발가벗은 인간, 자신의 비속함과 비열함마저 감추지 않는 재능은 위대한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솔직함이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털어놓으란 뜻은 아니다. 그런 글은 자칫 싸구려 행복 편지, 자극적 불행 포르노, 지루한 사건들의 나열에 그치기 쉽다.
작품 같은 삶, 빼어난 삶이란 진실을 담은 삶이다. 그 삶엔 일관성 있는 방향이 있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혼란에서 질서를 향해 끈질기게 나아간다. 솔직함이란 삶의 심오한 진실을 드러내는 사건들을 찾아내서 이를 조리 있게 이어 붙일 때, 자신이 보이고 싶지 않은, 삶의 가장 어두운 측면과 마주칠지라도 이를 외면하지 말란 뜻이다. 인생을 이야기로 만들 때, 용기는 진실의 얼굴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인 까닭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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