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후끈 달아오른 중국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이사 2023. 7. 7. 16: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4년 만에 참가한 ‘세미콘 차이나’ 전시회는 반도체 불황 속에서도 10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미국, 일본 기업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 자리를 중국 회사들이 차지했다. 수천개 중국 기업들은 지난 몇년간 새롭게 개발한 소재, 부품, 장비를 전시하며 실력을 뽐냈다.

전시회 기간 동안 수백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반도체 팹, 중국 지방정부, 소재·부품·장비회사,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대만, 싱가포르, 한국에서도 예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회에 참가했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화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지원정책’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대부분 투자유치 제안을 받았다. 땅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건물과 보조금 지원까지 언급했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생각도 못할 수준의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국가재정이 어려워 공무원 수당까지 깎고 있는 중국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해외 인재들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몇몇 해외 소부장 기업들은 이미 중국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국 소부장 기업들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다. 반도체 공급난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던 상당수 중국 반도체 팹들이 흑자로 전환되었고, 소부장 회사들도 2~3배 성장에 성공한 회사들이 허다했다. 외국 엔지니어들이 입국이 안되자 중국 엔지니어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대만, 일본, 한국의 엔지니어도 중국으로 많이 넘어갔다. 중국의 첨단 반도체는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태계는 지난 몇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한국 코스닥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의 PER(주가수익비율)는 10이 안되는 기업들이 허다한 반면, 과창판(중국판 나스닥)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PER가 40을 넘는다. 우리 회사 거래처 중에 매출이 그리 많지 않고, 기술력과 업력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조원 이상의 시장가치를 목표로 상장을 준비 중인 중국 기업들이 몇 곳 있다.

중국 정부는 주도면밀하게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불과 2, 3년 만에 장비를 만들어낸 중국 기업들을 찾아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장비를 만들어냈는지 물어봤더니, 중국 정부에서 장비 표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싼 가격에 제공했다고 한다. 중국의 주요 팹들은 의무적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 시제품의 성능 평가를 해준다. 거기다가 중국산 장비를 구매하면 장비 가격의 20-30%에 이르는 보조금이 지급된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으로 소부장 기업들은 개발기간을 줄일 수 있었다.

작년 10월 미국의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은 더 강화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의 모든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첨단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로 14나노 이하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앞으로 꽤 오랜 시간 현실적으로 어렵다. 축적된 기술 없이 속성으로 만들어진 소부장의 품질이 안정될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중국 기업들은 비교적 기술장벽이 낮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후공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떠올랐다. 특허가 만료된 장비들은 선진 장비기업의 기술을 카피해서 꽤 쓸만한 수준의 장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광기 등 기술장벽이 높은 분야는 유럽, 일본에서 30년 전에 만들었던 장비 수준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대만 부품회사 대표는 2, 3년 후 중국 기술에 추월당할 것을 걱정했다. 몇몇 한국 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된다는 푸념을 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 한국이란 나라가 새우가 될지, 돌고래가 될지 걱정된다. 그렇지만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미국의 중국 수출통제는 중국 기업들의 무서운 추격을 막아 한국 기업들에게 숨통을 키워주기도 했다. 경기도 남부에 만들어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태계가 더 강화된다면 넘사벽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특허 문제로 내수 시장에 전념할 때 한국 기업은 몇배 더 큰 세계시장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엔지니어들이 분발한다면 남들이 쫓아오지 못할 새로운 혁신도 일어날 것이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고, 21세기는 반도체의 시대이다. 최근 한국의 저조한 경제성장률과 수출을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운명이 반도체에 달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