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생명’ 괜히 걸었나? 원희룡, 국감 땐 양평 땅 “확인하겠습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제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이 거기(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근처에) 있었다는 것을 이 사건(특혜 의혹)이 불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게 있었다고 한다면 (중략)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밝히며 한 말이다. 원 장관은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장관직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었다.
첫번째 조건은 “김 여사 땅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게 있다면”이다. 원 장관은 이 밖에도 △“이 노선(서울∼양평 고속도로) 결정 과정에 (당시 양평군수였던) 김선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양평에 나들목(을) 만들어 달라는 것을 상임위에서 검토해 보겠다고 한 것 이외에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노선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면” △“권력층·국회의원·민간인으로부터든 누구나 이와 관련된 연락을 받거나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 △“제 휘하에 사업 업무 관여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받은 게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또 원 장관은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에 “추측과 정황만으로 찔끔찔끔 소설 쓰기나 의혹 부풀리기에 몰두하지 말고 자신 있으면 정식으로 국토부 장관인 저를 고발하라”고 촉구하고 “고발 수사 결과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근거가 없고 무고임이 밝혀지면 민주당은 간판을 내려라”며 압박했다.
앞서 지난 2017년 사업계획이 수립된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국도 6호선 교통 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추진됐다. 민주당은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애초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김 여사 일가가 땅을 소유한 강상면 근처로 종점이 변경됐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원 장관의 주장대로면 그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강상면)이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강상면 병산리) 근처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원 장관이 사전에 양평군 강상면 일대에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 야권에서 제기됐다. 약 1년 전 민주당이 원 장관에게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의 급격한 땅값 상승을 문제 삼은 것이다.
지난해 10월6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원 장관에게 “최근에 땅값이 굉장히 무섭게 올랐다”며 경기도의 한 땅을 언급했다. “땅값?”이라며 되묻는 원 장관에게 한 의원은 1997년 아버지에게 땅을 상속받은 ‘임야’가 여러 용도변경을 거쳐 약 20년 뒤 땅값이 56배 정도 폭등했다며 “이 땅의 주인은 김건희 여사의 일가”라고 소개했다.
한 의원은 “양평군 병산리의 산135에 대한 필지분할을 하고 등록전환(을) 하고 지목변경을 해 값어치를 높였다. 1002-21(필지)은 ‘대’(지목)로 돼 있는데 개별공시지가는 2003년 4790원에서 2020년 26만8700원으로 56배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의 형질변경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의원이 김 여사 일가 땅 가운데 (도로 보호 등을 위해) 형질변경 자체가 금지된 접도구역의 토지도 형질변경을 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자 도중에 원 장관은 “확인해 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 의원은 “이런 부분들을 검토해 봤을 때 양평군에서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겠냐”고 물으며 질의를 마쳤다.
한 의원의 질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관련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원 장관이 양평군 강상면 일대에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땅이 있다고 인지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책임 추궁에 나섰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7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10월6일 국회 국교부 국정감사에서 원 장관은 한 의원으로부터 김 여사 일가가 보유한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일대 토지에 대해 질의를 받았다. 원 장관은 그때 들은 토지 보유 현황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몰랐다고 우기는 것이냐. 정말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라며 “더 이상 국민을 희롱하지 말고 지금 당장 사임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한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왜 급하게 변경됐는지, 하필이면 변경된 종점 인근에 대통령 일가의 토지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라”며 “마지막으로 장관직과 정치적 생명을 건다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할 차례”라고 적었다.
이에 원 장관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안 노선이 김 여사 집안 땅을 지난다는 사실을 제가 알고 있었다는 가짜뉴스도 퍼지고 있다”며 “이 또한 황당한 주장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있던 ‘토지형질변경’ 논의는 대안 노선과는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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