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공포의 목장갑' 황지원

정완주 기자 2023. 7. 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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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안에 승부를 건다”
쿠드롱·조재호도 울고 갈 PBA 최고 속사포
프로당구 선수 황지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흔한 작업장에서나 보던 흰색 목장갑을 낀 중년의 사나이가 2021~2022 시즌에 혜성처럼 PBA에 등장했다. 나중에 '공포의 목장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황지원(50) 선수가 주인공이다. 대한당구연맹 소속 선수 출신이 아닌 그는 동호회 활동에만 전념해 낯익은 얼굴이 아니었다. 또한 3부 리그(챌린지투어)에서 바로 1부 리그로 직행했던 터라 당구 팬들 대부분은 황지원의 얼굴을 처음 본 셈이다. 하지만 초록색 줄무늬의 흰색 목장갑을 끼고 경기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 대번에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손에 땀이 많이 차는 일부 선수들이 짙은 색의 목장갑을 더러 착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황지원처럼 작업장에서나 사용하는 흰색 목장갑을 낀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죽방'에서 배운 생존 당구
7년 공백 딛고 동호회 활동

황지원에게 당구는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혈기 방장한 20살의 나이에 우연히 친구들이 당구를 치는 모습을 본 그는 별다른 당구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큐를 직접 들고 당구공을 쳐보자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겪었다.

"친구들과 달리 당구를 전혀 접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친구들이 경기를 마치고 난 뒤 장난처럼 큐를 들고 아무 생각 없이 공을 쳐봤습니다. 친구들이 치는 모습을 흉내를 내봤는데 내 의도대로 공이 움직이자 갑자기 뭔지 모를 강력한 느낌이 훅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당구 인생이 시작됐죠."

그날 이후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장을 매일 들락거렸다. 그러다 당구를 더 배우기 위해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당구장을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강남에서 나름 당구를 잘 친다는 고수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한국 당구계의 전설 이상천 선수는 물론 지금 PBA에서 같이 활동하는 '뽀빠이' 이홍기 선수나 신대권 선수 등도 그때부터 인연을 맺은 사이다.

"소위 말하는 '타짜'들이 노는 곳에서 하수 중의 하수가 낄 자리가 아니었죠. 빈 당구대가 나오면 혼자서 낑낑거리면서 열심히 공만 굴리니까 선배들이 좀 기특하게 봐준 것 같아요. 그 당시만 해도 고수들이 쉽게 가르쳐주지 않을 때인데 이것저것 하나씩 알려주더라고요. 그 재미에 빠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황지원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덕에 용돈이 궁핍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레슨비를 내는 셈 치고 고수들의 '죽방'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항상 돈을 잃을 수밖에 없지만 어깨너머로 고급 기술을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배들이 체계적으로 기초를 알려줬어요. 이것저것 연습이 필요한 배치와 해법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자세와 스트로크도 교정을 받았죠. 특히 스트로크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당구 선수 황지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22살 때까지는 거의 당구에 미쳐서 배운 것을 연습하고 게임을 하는 생활만 반복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오면서 친한 선배들과 함께 고수가 많은 당구장을 찾아다니면서 어울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구에 미쳐서 사는 생활이 26살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시면서 가세가 좀 기울어져 이런저런 여건으로 아예 당구를 끊게 됐어요. 그러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계신 인천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아는 친구들도 없으니 좀 심심하더라고요. 인터넷 검색으로 근처에 제법 큰 당구장을 찾아 다시 당구를 시작했죠."

당구를 끊은 지 7년 만인 33살 무렵이었다. 마침 찾아간 당구장은 제법 활동이 활발한 당구 동호회 '큐클럽'이 단골이었다. 황지원은 자연스럽게 동호회에 가입해 선후배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당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처음 동호회에 들어가 30점을 놓고 치겠다고 했더니 회원들이 다 놀라는 겁니다. 동호회 평균 수준이 20점 내외였는데 갑자기 고수가 등장한 거죠. 거기다가 7년 만에 큐를 다시 잡는다고 했는데 얼추 옛날 실력이 나왔어요. 결국 첫날부터 동호회 스타가 돼서 쉽게 어울릴 수 있었죠."

작은 손 약점 보완용 목장갑
5초 내 빠른 템포가 주특기

황지원이 목장갑을 선택한 계기는 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작은 손 때문이다. 얇은 경기용 장갑을 착용하면 큐가 흔들렸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구매가 편리한 흰 목장갑을 선택했다.

"지인들이 그래도 방송 경기인데 작업용 목장갑은 좀 그렇지 않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용 장갑을 사용해 봤는데 큐가 손가락 안에서 제멋대로 노는 거예요. 목장갑을 하면 큐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장갑을 착용하게 된 거죠."

첫 시즌에는 '광탈'을 반복하는 부진을 보였던 그는 6차 투어인 '웰컴저축은행 웰뱅PBA 챔피언십'에서 8강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듬해 2022~2023시즌 개막전에서는 128강서 응우옌 꾸억 응우옌(하나카드)을 꺾고 64강서는 '당구황제'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에 1대 3으로 패했지만 첫 세트를 따내며 분전했다.

초록색 두줄 무늬가 새겨진 흰색 목장갑을 착용한 그의 모습이 방송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내 '공포의 목장갑'이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목장갑이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이왕 화제가 됐으니 개인 후원사인 빌마트가 새겨진 목장갑을 주문해 버렸습니다. 후원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제가 회사 대표님께 제안해 받은 겁니다."

흰색 목장갑만큼 주목받는 그의 특징은 5초 이내에 바로 공격에 들어가는 '속사포' 본능이다. 공격 시간이 빠른 선수로 꼽히는 쿠드롱이나 조재호(NH농협카드)도 한 수 양보할 만큼의 빠른 공격 템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프로당구 선수 황지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원래부터 공격에 들어가는 시간이 빠른 편이었습니다. 상대방 공격이 실패해 공이 멈추기 전부터 미리 공략을 위한 설계를 시작해 공략 방법을 결정하고 공이 정지하면 대부분 3~5초 안에 샷이 나가죠. 난구를 제외하면 배치에 따른 두께, 당점, 힘배합. 포지션 등을 몸이 잘 기억하는 유형인 듯합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천적은 35초 공격 제한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신중한 스타일의 선수들이다. 동호인 대회를 나갈 때도 워낙 빠른 공격 템포가 유명해서 상대방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공격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들고나올 정도였다. 상대방이 '시간 공격'으로 그의 약점을 파고들면 제풀에 나가떨어져 패배로 이어지기도 했다.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제한 시간을 1~2초 남길 때까지 활용하는 프랑스의 제레미 뷰어 선수와 같은 유형을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국내 선수 중에서는 김종원 선수를 만나면 숨이 탁탁 막히죠. 워낙 꼼꼼하고 세심한 데다 시간도 최대한 활용하는 스타일이라서 저 스스로 슬슬 대미지가 오면서 감각이 떨어져 버립니다."

동호인 '핸디' 적용 흥미 반감
핸디 없는 경기 즐기려 PBA 3부행

동호회 활동을 즐기던 황지원은 프로선수를 목표로 삼지 않았지만 이상한 '객기(?)' 때문에 PBA로 진출했다. 친한 선후배들과 전국 일주 삼아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는 동호회 대회를 섭렵하던 재미가 반감됐기 때문이다. 동호인 대회는 수지에 따라 핸디를 적용하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어 때때로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됐다.

"대대 35점을 치는 동호인 고수들의 모임이 따로 있는데 핸디 게임 적용 문제를 놓고 우리끼리 한탄을 많이 했죠. 예를 들어 상대 선수가 25점이라고 해서 10점 핸디를 줬는데 치는 실력은 30점 이상인 경우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35점 모임에서 점점 동호인 대회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어차피 승부 게임을 할 바엔 핸디 없이 서로 공평하게 대결하는 PBA로 넘어가 3부 리그에서 놀자는 의견이 대세가 된 겁니다."

프로당구 선수 황지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황지원의 프로행은 그렇게 결정됐다. 프로선수로서 우승을 경쟁하자는 목표보다는 공정한 룰로 경기를 즐기려는 방편이었다. 그는 PBA가 출범한 이듬해(2020년) 3부 투어에 등록했고 그해 시즌 13위를 차지하며 큐스쿨에 진출해 2021~2022시즌 1부 리그에 합류했다. 1부 투어에 뛰어든 황지원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설렘을 즐겼다.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경기에 패한 아픔보다는 강자들에게 새롭게 배운 부분이 더 즐거운 겁니다. 선수들과도 친해지고 나면 제가 약한 배치를 스스럼없이 물어보고 배우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제 약점이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었고 새로운 강자와 만나면 전날부터 설렘과 기대감이 솟아났죠."

황지원은 1부 투어에서 밀려나 이번 시즌부터는 2부 리그인 드림투어를 뛴다. 3부에서 1부로 월반을 했던 터라 2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올해 목표는 2부 투어에서 성적을 내서 다시 1부로 복귀하는 겁니다. 시즌 도중에 와일드카드로 선택되는 행운이 따라 좋은 성적을 내서 포인트를 쌓고 1부에 올라가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겠죠. 결국 굵은 땀을 더 흘려서 실력을 더 쌓아올리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죠. 나이는 먹었지만 열정만은 아직 청춘입니다."

그는 올해 50세이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프로행을 선택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평생 당구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 일념은 변치 않을 것임을 자부하고 있다.

"당구만 치다가 아직 결혼도 못한 노총각 신세지만 좋은 성적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후배 양성에도 노력할 생각입니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제 이름을 걸고 당구 아카데미를 열고 싶은 것이 작은 목표이기도 합니다."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황지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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