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침략이 아닌 날씨가 마야문명을 멸망시켰다"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7. 7. 16: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류사 가장 큰 변수는 기후 주장한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

인류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명과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무엇이 문명이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을까? 실패한 리더십 아니면 외세의 침략 아니면 내부 분열이나 불운.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정답은 날씨"라고 자신 있게 답한다.

그의 저술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짧은 시간을 사는 인간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날씨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날씨는 가끔 인간이 믿었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변덕을 부렸다. 그럴 때 날씨는 전쟁도 해내지 못한 격변을 불러온다.

페이건은 마야문명이 스페인 침략이 아닌 가뭄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건축술과 농경술로 놀라운 문명을 구축했던 마야는 스페인이 침략하기 이전 이미 과거의 영화를 모두 잃어버리고 잔존 세력만이 있었다.

가뭄 때문이었다. 800년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마야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고 코판이나 티칼 같은 도시는 이미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당시 마야는 늘 그랬듯이 모두가 먹고살 수 있는 농업 생산성이 지속될 거라고 믿었다. 자신들이 만든 우물과 축대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년 같은 기간 비슷한 날씨가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인류가 날씨의 지배를 결정적으로 받기 시작한 건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1만5000년 전 지구의 기온이 오르고 숲이 울창해지자 먹을 것이 많아진 인류는 정착하기 시작했다. 정착 생활로 유연성과 기동성이 떨어진 인류는 이때부터 날씨에 목줄을 내주게 된다.

기후변화가 도시를 멸망시킨 사례는 많다. 성경에서도 언급하는 대도시 우르는 기원전 2200년쯤 가뭄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기원전 1200년쯤 발생한 엘니뇨로 인한 기후변화는 히타이트 제국과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으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도탄에 빠뜨렸다.

페이건은 지금 인류가 멸망한다면 기후변화가 원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우리가 건설한 도시 문명이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주범이다. 20세기 내내 지표면의 평균온도는 0.6도 상승했다. 단순히 온도만 상승한 게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이 달라졌고, 밀물과 썰물 주기가 변했으며 자연계의 식생이 무너지고 있다.

사실 이미 19세기에 기후변화로 사망한 사람만 2000만명을 넘는다. 이는 같은 기간 전쟁 사망자의 숫자를 압도한다. 20세기나 21세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두려운 건 인류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방법이 있다면 인류가 편리함을 포기하는 것뿐인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