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불가리아 원전협력…"러 동유럽 영향력 감소 방증"

이도연 2023. 7. 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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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건설 중단한 러산 원자로 등 우크라 매각 추진
"푸틴 책략에 사로잡히던 구소련권, 우크라전 후 급히 이탈"
우크라 대통령과 불가리아 총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불가리아가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산 원자력 발전 장비를 매각하는 내용의 계약이 타결을 앞뒀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불가리아 국영 전력기업 NEK가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기업 에네르고아톰에 건설이 중단된 벨레네 원자력 발전소의 러시아산 원자로 2기 등 장비를 최소 6억유로(8천530억원)에 파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거래가 성사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만든 원자력 발전 장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생산에 쓰이게 된다.

WSJ은 러시아와 오랜 기간 우호적 관계였던 옛 소련 위성국 불가리아가 이와 같은 거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벨레네 원전은 불가리아의 제 2원전으로 1980년대부터 건설이 시작됐으나 여러 차례 중단됐다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불가리아 정부는 2012년 러시아 로사톰과 제2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했으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라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압박에 6억100만 유로를 배상하고 계약을 취소한 바 있다. 당시 이미 만들어진 러시아산 장비는 불가리아가 배상금을 지불하고 받는 조건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비용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불가리아와 미국 정부 사이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매수 대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선택지로 논의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이 에네르고아톰에 자금을 지원하고 그다음 에네르고아톰이 NEK에 매수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불가리아가 인수될 원자력 발전 장비가 놓일 우크라이나의 흐멜니츠키 원전의 소규모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날 불가리아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니콜라이 덴코프 총리와 회담하고 이 거래에 대해 논의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후 트위터를 통해 "에너지가 근본적인 우선순위였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거래에 대해 주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코멘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고 에네르고아톰은 코멘트를 거절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안보와 독립을 지지하며 이번 거래와 미국의 잠재적인 자금 지원에 대한 내용은 불가리아와 우크라이나 정부에 문의하라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와 관련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유럽에서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WSJ은 분석했다.

전쟁 전 유럽의 최대 에너지 공급국이었던 러시아의 공급 비중은 현재 크게 줄어들었다.

전쟁 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했던 유럽은 지난해 서방의 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가격이 치솟자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체재 수입을 늘리고 가스 소비량을 감축한 바 있다.

불가리아 역시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대부분의 가스 공급을 러시아에 의존했다.

러시아는 그간 전 세계 핵 공급망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왔고 이는 불가리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불가리아와 러시아의 원자력 협력은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랜 기간 동유럽의 분열을 이용, 프로파간다·경제적 압박·해킹·정치적 속임수 등의 수단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전략이 유럽연합(EU)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이자 러시아와는 오랜 기간 역사적·경제적 관계를 유지해온 불가리아에서 잘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제3국을 통해 무기를 지원해온 기존 관행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무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불가리아 싱크탱크 민주주의연구센터(CSD)의 마르틴 블라디미로브 에너지·기후 프로그램 책임자는 "이번 거래는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에너지 영향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장을 유럽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서방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거래가 성사될 경우 우크라이나에는 전력 공백을 메우고 유럽으로 전력 수출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우크라이나 원전 기술자들은 이미 러시아산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고 WSJ은 전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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