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역사의 끝…서울백병원 "8월 31일 진료 종료"

박정렬 기자 2023. 7. 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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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의 신의료인]
서울백병원 전경.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다음달 31일까지 외래, 응급실, 입원 등 모든 환자 진료를 종료한다고 7일 밝혔다. 이로써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을 시작으로 82년간 명맥을 이어온 서울백병원은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지난달 20일 열린 이사회에서 서울백병원 폐원을 의결한 후, 각 부속병원의 의견 수렴과 내부 논의를 거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서울백병원의 몰락은 도심 공동화 현상과 대규모 병원의 잇따른 개원 등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서울백병원이 위치한 서울시 중구는 거주 인구가 거의 없고 반경 3㎞ 이내 국립중앙의료원(505병상), 서울대병원(1820병상), 강북삼성병원(723병상), 세란병원(211병상), 서울적십자병원(292병상) 등이 포진해 경쟁이 치열하다. 경영 효율을 위해 직원을 줄이고 가동 병상 수를 276개(2017년)에서 122개(2023년)로 절반 이상 줄였지만, 그럴수록 의료 경쟁력이 악화해 '대학병원'이란 간판이 무색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2004년 73억원의 의료 손실을 시작으로 20여년 간 쌓인 적자만 1745억원에 달한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누적적자보다 더 큰 문제는 늘어나는 적자의 규모"라면서 "진료 일수가 적었던 올해 1~2월은 월 의료수익이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지난 3~5월의 평균 병상 가동률은 66.2%, 일평균 수술 건수는 9건에 불과하다. 중증 환자 보다 경증 환자를, 수술 대신 외래 위주의 진료와 건강검진을 주력으로 삼다 보니 경영난이란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의 역사와 상징성, 그리고 환자 진료에 대한 책임 등을 고려해 수년간 경영정상화 노력을 해왔으나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긴 어려웠다"면서 "외부 전문기관의 경영컨설팅 결과 △종합병원 유지 △전문병원 전환 △검진센터 및 외래센터 운영 △요양병원 및 요양 거주시설 등 어떤 의료사업도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회가 열린 지난달 20일 서울백병원 입구에 폐원을 반대하는 피켓이 놓여있다. /사진=박정렬 기자


하지만, 이사회의 일방적인 폐원 결정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교수협의회, 동문회, 노조 등 구성원은 물론 이 병원의 설립자(백인제 선생)와 그의 수제자(장기려 박사)의 후손까지 공개적으로 '폐원 철회'를 요구했다. 서울시는 도심 의료 공백을 이유로 해당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로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면 서울백병원 부지는 병원 등 의료시설로만 쓰일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백병원을 '감염병 관리시설'이나 '필수 의료시설'로 지정하고, 용적률 완화 등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의 폐원은 부산·일산·상계·해운대 등 전체 의료원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부지매각을 통한 수익 창출이 폐원의 목적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부지와 관련해 어떤 논의도 진행하지 않고 있으며 추후 폐원 절차가 마무리되면 별도로 논의할 계획이다. 어떤 형태로 운영하게 되든 그로부터 창출되는 재원은 전부 의료원 산하 '형제 백병원'에 재투자할 것"이라 덧붙였다.

서울백병원은 다음 달까지 원내 공지, 전화, 문자를 이용해 환자에게 진료종료일과 서류 발급 방법 등을 안내하고 입원 중인 환자는 타 병원의 전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병원에서 교육 중인 인턴 의사는 개별 면담을 통해 형제 백병원이나 타 병원으로 이동을 진행하고 사업체 검진, 임상 연구 등 진행 중인 사업은 협의를 거쳐 형제 백병원으로 이관을 추진할 계획이다.

400여명에 달하는 서울백병원 구성원은 고용이 보장된다. 이를 위해 상임이사와 의료원장이 직접 수도권과 부산의 형제 백병원을 오가며 경영진의 협조를 구하고, 전보 조처될 구성원들의 안착과 조직융합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법을 검토할 예정이다.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부산·상계·일산·해운대 등 남은 4곳의 백병원은 향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지역별 특성과 요구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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