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에 위기 느낀 오프라인 매장, 살아남기 위해 사막에 눈을 뿌린다[다른 삶]

기자 2023. 7. 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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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라이프 |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UAE
아부다비와 두바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배달 오토바이.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을 가둬두었던 코로나19의 공포가 사그라지면서 UAE를 찾는 한국 관광객의 발길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검색 포털뿐 아니라 교민들로 이루어진 단체 채팅방에 찾아와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정보를 구하기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질문이 ‘약을 구하는 방법’이다. 즐겁게 떠난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하게 아프기라도 하면, 인근 약국의 위치도 모르거니와 약 이름조차 생소해 머릿속이 하얘지기 마련이다. 이런 마음을 잘 아는 교민들은 생면부지의 여행객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만약 UAE에서 급하게 약이 필요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만큼 배달문화가 발달한 이곳에서는 휴대전화와 와이파이만 있다면 한 시간 내로 비상약을 구할 수 있다. 모바일 지갑(애플페이, 삼성페이 등)을 통해 결제가 가능하므로 환전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대표 배달 앱 중 하나인 인스타숍(Insta shop)에 접속해보면 내 주변의 약국 리스트와 예상 배송 시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약 이름을 찾아낸 뒤 (이는 현지의 교민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친절히 알려주는데 오픈 채팅방이나 검색 포털에서 ‘국가명 + 한인회’를 검색하면 교민 모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위치로 배송을 요청하면 끝이다. 오토바이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받을 수 있고 배송료는 공급자에 따라 상이하지만 대체로 1000~3000원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배달 앱을 통해 구할 수 있는 건 비단 약뿐이 아니다. 완구, 문구, 정육, 소형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오토바이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상품이라면 뭐든지 구비되어있다. 한 플랫폼에 의하면 등록된 상품 수가 100만개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UAE ‘배달문화’ 한국만큼 발달
휴대폰·인터넷 보급률도 높은 편
애플·삼성페이 등 핀테크 대중화
약부터 식품·문구·소형가전까지
1000~3000원이면 1시간 내 도착
점점 설자리 줄어드는 유통 매장들
고객에 ‘새로운 경험’ 선사 공들여
실내 스키장 이어 눈설매장도 개장

40도가 넘어가던 어느 주말 오후, 집에서만 노는 게 지루하다는 아이들이 어딘가 광고에서 본 ‘슬라임’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집 근처 대형 쇼핑몰에 위치한 문구점으로 슬라임을 사러 나갈 생각을 해보니 채비를 해서 지하 주차장까지 가는 데만 최소 10분, 핸들조차 뜨거운 차에 시동을 켜고 쇼핑몰 주차장까지 가는 데만 최소 5분이 걸린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어쩌면 직접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문구점에 도착한 아이들은 분명 다른 장난감도 보고 가면 안 되냐며 약 20분간의 실랑이를 할 것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보며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고 가면 안 되냐고 할 것을 상상하니 최소 1시간 소요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을 계산해본 나는 앱을 연 뒤 배송료 3000원을 지불하는 방법을 택했다. 슬라임은 정확히 25분 만에 도착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야금야금 생기던 이러한 배달 서비스는 강력했던 록다운 기간 동안 그 편의성을 눈부시게 입증했고 이제는 이 편리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지난 5년간 UAE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연평균 23%씩 증가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다. 온라인 쇼핑 강국인 한국에 비하면 절대 규모는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인구 1000만 국가에서의 거래 규모임을 감안하고 인근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를 넘어 아프리카 시장까지 내다본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디지털 경제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적극적인 소비계층인 청장년층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인터넷 보급률 또한 높아 온라인 쇼핑에 대한 거부감이 낮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지탱해주는 정보기술(IT) 인력이 끊임없이 인도에서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온라인 생태계를 풍부하게 해주는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최근 아부다비에 문을 연 실내 눈썰매장의 모습.

전 세계에서 이민 온 무슬림들은 UAE 정부와 현지 기업들이 가진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대표적으로 대예배가 금요일 오후에 열리는 점을 감안하여 금요일에는 오전 근무만 실시하거나 사규에 따라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정책이다. 또한 일정 기간 근속 시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 무급 휴가(haj leave)를 일생에 한 번, 최대 한 달가량 인정한다. UAE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무슬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이슬람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나라에서 살 때는 기도나 성지순례를 위해서는 개인 휴가를 사용해야만 했고 이마저도 회사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일상이 어디선가는 이해받지 못할 행동이 되니 그 불편함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곳의 배달 서비스 종사자는 인근 중동국가 및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UAE 정부는 이들의 정착을 위한 유연한 거주 정책을 통해 인구증가를 노리며 미디어를 통해 ‘중동드림’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두바이의 장동건으로 유명한 셰이크 함단 빈 무하마드 알막툼 왕세자는 지난해 자신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운전 중 도로 한가운데 놓인 벽돌을 치우는 배달원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며 그의 선행을 칭찬하였고 헬멧을 쓰고 있는 그 배달원을 찾아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 뒤 파키스탄 출신의 그 배달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왕자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렸고 이를 UAE의 온 매체가 보도했다. 사람들은 이 훈훈한 이야기를 즐기며 앞으로는 도로에 놓인 벽돌을 잘 줍고 다녀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덕택에 UAE의 온라인 시장은 아마존(Amazon), 눈(Noon.com), 까르푸(Carrefour), 스피니스(Spinneys) 같은 전통적 유통 강자들뿐 아니라 딜리버루(Deliveroo), 인스타숍(Insta shop), 탈라밧(Talabat)으로 대표되는 배달업체의 장보기 서비스와 더불어 최근에 등장한 인플루언서들의 프라이빗 마켓 및 편집숍까지 구축되며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모든 걸 내 집으로 한 시간 내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가 펼쳐졌다.

이에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드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제 살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부다비의 대표 프리미엄 쇼핑몰인 갤러리아몰과 야스몰은 그곳에 입점되는 것만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입증해보일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실내 쇼핑 환경을 선호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바이럴을 태우기 좋은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팬데믹과 온라인 쇼핑의 성장으로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하자 최근에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장으로 변모하며 그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당기려 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나 문화예술 활동이다. 크리스마스나 핼러윈 시즌이 찾아오면 이곳이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무대와 장식이 펼쳐진다. 연말에는 아부다비의 거의 모든 쇼핑몰에서 일정 금액을 구매하면 산타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한다.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아까 그 산타할아버지는 좀 가짜 같았어”라며 비교를 할 정도이다. 그외에도 마술쇼, 인형극, 곡예, 뮤지컬 등 공연장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최근 아부다비 알림(Al Reem) 섬에 문을 연 림몰(Reem Mall)은 개장 전부터 ‘스노 아부다비’에 대한 광고를 하며 화두가 되었다. 이미 두바이의 에미레이츠 몰에는 스키두바이(SKI DUBAI)라고 하는 실내 스키장이 성업하고 있어 연일 40도가 넘어가는 뜨거운 날씨에서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부다비는 스키두바이의 눈썰매장 버전을 개장하였고 1일 입장료가 8만원에 육박하는데도 ‘신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인기 있는 레스토랑의 분점이나 뉴욕의 인기 있는 상점을 입점시키는 등의 노력으로 온 가족이 만족하게 해주는 공간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

이름조차 낯선 중동국가에서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나 장보기였다. ‘쿠팡맨’ 없이는 육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온라인 쇼핑과 배달 서비스에 의지했는데 이것들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닥쳐보니 이 모든 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그뿐이랴.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각종 행사와 액티비티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니 고국을 그리워할 새가 없다. 이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며 경기 활황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통치자는 “현재 UAE가 이룬 성과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비전의 10%에 불과하다”며 두바이를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추진력과 새로운 IT가 힘을 보탠다면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도시를 이곳에서 마주할 날이 머지않으리라는 기대감이 든다.

▲조혜임

국내외 기업에서 커뮤니케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남편, 쌍둥이 딸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거주하며 현지의 일상을 글과 그림에 담아 소셜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다.

조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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