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연기가 늘었으면 좋겠다"…돌아온 김선호의 겸손한 바람

김지혜 2023. 7. 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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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네가 괜찮으면 같이 하자'라는 말에 일단 감사함이 컸고요. 더 이상 누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게 연기니까 보답은 최선 다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순간 고민이라는 건 '사람 김선호'에겐 없었어요. 그저 감사함 뿐이었죠"

2021년 김선호는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였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히트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때 사생활 스캔들 터졌다. 대중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고,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관계자들도 등을 돌렸다. 촬영을 앞둔 차기작들의 출연이 무산됐다. 영화와 방송이라는 것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작업인 만큼 관계자들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릴 때 끝까지 신의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 '귀공자'의 박훈정 감독과 스튜디오 앤 뉴의 장경익 대표였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알기에 누구보다 더 '귀공자'를 잘 수행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선호는 보란 듯이 잘 해냈다.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김선호는 타이틀롤인 귀공자 역을 맡아 관객을 기묘한 매력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귀공자는 필리핀부터 한국까지 마르코의 여정을 쫓는다. 그를 위협하는 것인지 지키려는 것인지 의도가 불분명해 보이는 탓에 귀공자의 롤도 악역과 선역의 경계에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캐릭터는 심각하지 않다. 시종일관 유머를 날리며 극의 분위기와 흥미로운 엇박자를 낸다.

오프닝부터 뭔가 조금 달랐다. 귀공자는 화이트 수트를 차려입고 휘파람을 불면서 나타난다. 그리고는 피칠갑을 한채 쓰러져 있는 남성에게 다가가 미소 짓는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면 표정이 안 좋거나 무표정해야 하는데 웃잖아요. 친구라면서 휘파람도 불고요. '아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지'라는 생각뿐이더라고요. 다행히도 첫 촬영은 아니고, 중반쯤 촬영하게 된 터라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갔어요. 연기할 때는 최대한 많은 걸 표현했고, 감독님이 편집하시면서 조금 덜어내신 것 같아요"

김선호는 드라마에서 간간히 액션 연기를 보여준 적은 있지만 본격 액션 영화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는 "확실히 좋은 액션 장면을 찍으려면 많은 양의 액션을 준비해야 하더라고요. 합도 중요하고요.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많아서 변경되는 합도 잘 맞춰야 했어요. 또한 너무 판타지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과한 액션들은 배제하면서 찍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귀공자의 액션 능력치는 가히 초인과 가깝게 묘사됐다. 현실의 공간에서 뛰어노는 절대적 능력의 캐릭터인 탓에 '마녀' 시리즈의 남자 버전 같은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고가 다리를 뛰어내리는 장면 때문에 초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시나리오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에게 "이게 돼요? (사람이) 살 수 있어요?"라고 물었어요.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떨어져도 보고, 굴러도 보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저도 촬영하면서 "이 친구 초능력은 없는 거죠?"라고 물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대답은 "응. 얜 프로야" 정도였어요. 생각해 보니 그게 감독님의 세계관이더라고요. '존 윅'도 그만의 세계관이나 장치가 있는 것처럼 저희 영화에서 이런 설정은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귀공자는 콘셉트가 확실하고, 설정이 많은 캐릭터였다. 이를테면 늘 멋진 수트를 차려입고, 콜라를 마신다. 콜라의 경우 대본에 '참 어린애처럼 맛있게도 먹는다'는 지문이 있었다고 했다. 귀동자의 반복된 행동에 '왜'라는 물음표가 생겼고, 의도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저도 의아했어요. 잔인한 행동을 하고도 나쁜 걸 모르는 채 어린아이처럼 즐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이 친구에겐 이건 일종의 놀이 같은 건가라고 생각하며 다가갔어요. 감독님께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오렌지'를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알았죠. 나쁜 짓을 하는데 그게 나쁜 짓인지 놀이인지 모호하게 보이길 원하시는구나. 이 친구가 이러한 행동을 최대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외적으로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미소에서는 '조커'가 오버랩됐다고 하자 "대본 자체에 '웃으며'라는 지문이 많았어요. 아, 그리고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조커라는 캐릭터가 '시계태엽오렌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웃을 때도 웃음의 강도를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만들어갔어요. 입을 끄게 벌리면서 함박웃음을 짓다 보니 어떨땐 경련도 일어나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선호는 귀공자 캐릭터의 매력을 '불예측성'으로 꼽았다. 그는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보면서 예측되지는 않겠다 생각했어요. 긴박한 상황에서 만난 마르코에게 "안녕 친구, 반가워"같은 너스레를 떨거나 사람들을 한 바탕 죽이고 난 뒤 "역시 차는 벤츠야. 벤츠"같은 대사를 하니까요.

작품의 완성도에 찬물을 끼얹는 쿠키 영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자, 김선호는 그같은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연출 의도를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저 또한 귀공자가 진짜 몰랐냐고 물었어요. 감독님께서 귀공자는 전문 킬러라 병원에 함부로 갈 수 없어 집단에 소속된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병원을 간 거라고 하셨어요. 원래는 병원에 찾아가는 장면도 없었어요. 저는 다른 쿠키 영상이 있었는데 이걸로 바뀌었어요. 덕분에 감독님의 유일한 해피엔딩인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감독님께서는 다소 엉뚱하게 보이더라도 코믹 요소를 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귀공자'는 이야기의 개연성과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에도 김선호는 자기중심을 잡고 감독이 의도한 바를 자신의 개성을 더해 표현해 냈다. 김선호의 활약은 영화의 가장 주요한 볼거리다. 그러나 그는 칭찬에 부끄러워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배우로서 간절한 건 연기가 좀 늘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누군가 제게 '존경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전 늘 답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선배들의 좋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예를 들면, '조커'를 처음 해내는 건 어렵지만 우리에겐 故 히스 레저라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잖아요. 저도 언젠가 무언가의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꿔요. 인생에서 큰 변화를 꿈꾸진 않아요. 왜냐하면 전 늘 절실하니까요. 다만 그게 너무 과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한 발 떨어져셔 생각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자신만의 장점으로 '느리지만 유연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자신을 '느림보'라고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제가 잘 못 알아 들어요. 그래서 뚝딱거리기도 하고요. 좀 느린 편이죠. 전 질문이 좀 많은 편인데요. 그건 잘 알아듣고 싶어서예요. 이를테면 '사람 인생이 묻어나게 웃어달라'는 것과 '밝게 보이는 웃음'은 같은 웃음이라도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걸 이해하고 찾아내는 과정이 좀 느려요. 그런데도 잘하고 싶어서 계속 질문을 해요. 대답하는 분들은 지치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한 번 알아듣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계속 잘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공백기 시절을 언급했다. 연극 무대에 오르며 받았던 긍정의 에너지가 궁금했다.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답을 예상했으나, 그가 먼저 꺼낸 말은 '연기'가 아닌 '사람'을 통한 치유였다.

"음...연기도 연기인데 사람을 만나는 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순수하게 다가오고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팬들을 보며 위안과 치유를 받았어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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