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中 경제라인과 연쇄회담...보란 듯 젓가락 식사하며 우호 메시지
‘미국의 경제 사령탑’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7일 베이징에서 리창 중국 총리를 만날 전망이다. 전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옐런은 이날부터 9일까지 머물며 중국 경제라인 핵심 인사들을 만나 양국의 경제 현안을 논의한다.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미·중 고위급 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것이다. 옐런의 방중은 2021년 1월 재무장관 취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고율 관세·반도체 규제 등 주요 사안에서 양국 입장 차가 크기 때문에 이번 방중의 성과는 양국 경제 라인 소통 채널 구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공항서 무지개 감상, 식당은 윈난 음식점 선택
옐런은 6일 오후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와 양잉밍 중국 재정부 국장의 환대 속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번스가 하늘을 가리키며 무지개가 떠 있다고 알리자 옐런은 미소를 지으며 한참 동안 쳐다 봤다. 저녁 식사는 베이징 싼리툰의 윈난 음식점 ‘이줘이왕(一坐一忘)’의 홀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했다. 룸에 들어가지 않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앉아 젓가락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날 옐런은 트위터에 “이번 (중국) 방문은 소통할 기회이자 의사소통 오류나 오해를 피할 기회”라고 썼다.
옐런의 목표는 중국 핵심 인사들과 회동하며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적개심을 줄이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옐런이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와 관세 정책을 사수하는 동시에 미국에 대한 중국의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미션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옐런은 7일 리창 총리와 류허 전 부총리 등을 만나고, 이후 허리펑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등과 회동한다. 지난 3월 은퇴한 류허는 ‘시진핑의 경제책사’로 불렸던 인물로, 올해 초에도 옐런과 만난 적이 있다.
옐런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제한 등 조치가 ‘디리스킹(중국 의존도를 낮춰 위험 제거)’의 일환이고, 광범위한 경제 전쟁을 벌이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팀 애덤스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은 NYT에 “옐런은 미국이 무역·투자 분야에서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관심이 있다고 밝힐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옐런을 ‘말이 통하는 상대’로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중앙은행의 의장을 지냈고, 디커플링·대중 고율 관세에 부정적 의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옐런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부과된 대중 고율 관세는 미국 소비자·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고, 올해 초에는 “미중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양국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했다. 크레이그 앨런 미중 기업협의회장은 “중국 인사들은 옐런 장관이 경제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를 대하기 편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국 고문이었던 마이클 필스버리 헤리티지재단 중국전략 담당 선임연구원도 중국 당국자들이 옐런을 ‘중국의 친구’, ‘이성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여긴다고 분석했다.
◇관세·반도체 집중 논의될 듯
양국의 경제 협상 테이블에는 대중 고율 관세와 위안화 환율, 반도체 규제, 공급망 재편, 반간첩법, 기후변화 등이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중국 재정부는 7일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은 중미 정상이 발리 회담에서 도달한 합의를 실천하고, 양국 재무 영역에서 소통·교류를 강화하는 구체적 조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호혜고, 무역전쟁·디커플링(탈동조화)에는 승자가 없다”고 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계속된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를 핵심 의제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주민 전 부행장은 7일 관영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옐런 장관의 방중에서 양측의 핵심 쟁점은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 철폐”라며 “무역이 중·미 경제 관계의 초석인 상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상품에 대한 고율 관세 취소는 양측이 논의해야 할 첫 번째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수출 규제 또한 중요 의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인공지능(AI) 등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지난 5월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의 중국 판매를 금지했다. 지난 3일엔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하며 맞불 조치를 내놓았다. 미국은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클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대중(對中) 제재 범위를 넓힐 채비를 하고 있어 중국이 이에 대해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1일 시행한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안으로 미국 기업들의 중국 내 활동 제약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옐런의 이번 방중에서 대중 규제 일부를 철폐하는 등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작다. 양국의 대외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이 양보하기 어려운 탓이다. 바이든 행정부 내에선 미국 일자리 보호,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개선 등을 위해 대중 관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고, 미 재무부는 지난 2일 옐런의 방중을 발표하며 국가 안보를 강조한 ‘대중 경제 3대 원칙’을 다시 언급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옐런 방중의 중요 포인트는 양국 관계가 하향 흐름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고위급 의사소통 채널을 계속 열어두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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