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운명 바꿨던 맥도웰, ‘꿩대신 탱크’였다
‘KBL 원조 원투펀치는?’ 당시부터 농구를 봐온 이들이라면 '컴퓨터 가드' 이상민(51‧ 183cm)과 '탱크' 조니 맥도웰(52‧194cm)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농구대잔치 시절까지 포함하거나 KBL 역사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여러 가지 다른 답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KBL 원조로 좁힐 경우 이상민-맥도웰만한 조합이 없다.
이상민은 원년 최고 스타 강동희의 뒤를 잇는 리그 간판 야전사령관이었다. 2번의 도움없이도 원맨 리딩이 가능한 몇 안되는 실력파 정통 퓨어 포인트가드로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자로 잰듯한 패스를 내외곽에 뿌려대며 언론으로부터 ‘컴퓨터 가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이틴 스타같은 외모와 그로인한 높은 인기로 인해 여성팬들 사이에서는 ‘산소같은 남자’로 통하기도했다.
사실 이상민은 딱히 맞춤형 파트너가 필요없는 유형의 선수였다. 기본적으로 BQ가 좋았으며 빼어난 운동능력에 더해 최상급 패싱능력을 뽐냈다. 어디 그뿐인가. 3점슛 라인에서 몇걸음 떨어진 위치에서도 안정적으로 외곽슛을 꽂아넣을 만큼 슈팅력이 좋았고 페이스업, 포스트업에 모두 능했다. ‘포인트가드가 아닌 슈팅가드로 뛰었어도 역대급 2번으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는 평가가 과장으로 들리지않는 이유다.
그런 관계로 이상민은 어떤 스타일의 멤버와도 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함께하는 상대의 경기력을 최대치까지 살려줄 수 있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연세대 시절에는 원센터(서장훈)-3슈터(문경은, 우지원, 김훈)를 이끌었고 상무 입대 후에는 문경은-조성원 쌍포의 레이더 역할을 맡아준 바 있다. 한참 이후의 일이지만 좋은 가드가 많은 삼성에서 뛰게되자 때로는 슈팅가드로 뛰면서 토종 주득점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도웰은 이상민과 특별한 파트너라고 불릴만했다. 빅맨치고 신장은 작았으나 탄탄한 체격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이 엄청났던지라 패스를 받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단연 압권이었다. 좋은 위치 혹은 타이밍에서 어시스트를 넣어주던 이상민도 대단했지만 우겨넣어서라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마는 맥도웰 또한 극찬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던 플레이어였다.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켜버리는 그들의 콤비 플레이를 두고 ‘KBL판 존 스탁턴과 칼 말론이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블런트 대신에 뽑은 맥도웰, 꿩대신 탱크!
지금이야 초창기 현대(현 KCC)를 만든 일등공신중 한명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1997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당시만해도 맥도웰을 주목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원년 활약을 통해 기량이 검증된 외인 클리프 리드와 제이슨 윌리포드, 그리고 새로운 얼굴인 제이 웹, 로버트 보이킨스, 키넌 조던, 래리 데이비스, 존 스트릭랜드 등에 쏠려있었다.
사이즈가 좋거나 운동능력이 탁월하거나 아님 다양한 득점 능력이 돋보이는 등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를 갖춘 선수들이 각팀의 주목을 받았고 1라운드에 지명됐다. 반면 2라운드 9순위(전체 19순위)로 거의 끝자락에 지명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맥도웰은 당시 참가선수 중에서도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 신선우 감독 또한 그에게 큰 기대를 걸기보다는 남아있는 선수 중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보여서 혹시나하고 뽑은 케이스다. 사실 신감독이 원한 선수는 따로 있었다. 세인트 조셉 대학교 출신의 슈팅가드 버나드 블런트(52‧188cm)였다. 대학시절부터 팀내 득점 리더를 담당할 정도로 공격력이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블런트는 현대에서 지명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타팀들도 암묵적 동의하에 블런트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런가운데 변수가 발생했다. LG가 덜컥 블런트를 지명해버린 것이다. 규정상 문제는 없었다.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누가 누구를 뽑는다고 뭐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팀 간의 이해관계에 더해 보이지않는 룰 등은 분명 존재했고 그것을 깨트렸다고 생각한 신감독은 LG 이충희 감독을 향해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신감독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별반 기대없이 뽑았던 맥도웰이 대박이 나며 블런트 이상가는 선수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블런트가 외국인선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득점 기술자였다면 맥도웰은 당시 상황에서 어떤 외국인선수가 국내 무대에 잘 적응하고 높은 공헌도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 케이스였다. 당시만해도 각팀 감독들의 눈을 사로잡는 외국인선수는 사이즈가 큰 빅맨이나 운동능력이 돋보이는 유형의 테크니션이었다.
때문에 각 선수간 정보가 디테일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덩크슛을 펑펑 찍어대거나 높은 점프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더 띌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키가 크지도 그렇다고 운동능력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맥도웰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언했다. 그렇다고 이전 무대에서의 커리어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맥도웰은 현대는 물론 다른 어떤 팀에서도 탐낼만한 선수였다. 협회 차원에서 외국인선수 제도를 들여온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각 구단으로서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팀이 승리하는데 최대한 보탬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맥도웰은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힘이 좋을듯 싶어서 뽑았다는 신감독의 말처럼 두꺼운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가 엄청났다. 신장은 크지않았지만 힘과 몸싸움 능력을 앞세워 골밑을 휘젓고 다녔다. 자신보다 큰 상대팀 센터와 맞붙어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던지라 좋은 자리를 선점한 후 리바운드를 따내는 것은 물론 힘을 바탕으로 우겨넣는 공격이 일품이었다.
탄력과 기술이 돋보이는 선수들과 비교해 멋(?)은 떨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실속적인 부분에서는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장단신으로 신장을 구분해서 선수를 뽑았던 당시, 센터와 가드 혹은 스윙맨 조합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상황에서 단신으로 분류됐던 맥도웰이 어지간한 센터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자 현대는 ‘트윈타워’가 가동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일단 골밑싸움에서부터 우위를 점하고 들어가는게 가능해졌다.
어쨌거나 LG의 블런트 지명은 맥도웰이라는 괴물 4번을 등장시키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양팀의 향후 행보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블런트 또한 당시 LG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으며 기대치에 걸맞는 활약을 했지만 득점은 물론 리바운드, 몸싸움 등 여러부분에서 두루두루 공헌도를 가져간 맥도웰도 그에 못지않았다.
외려 시즌이 진행될수록 각팀 감독들이 탐내던 선수는 블런트가 아닌 맥도웰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블런트는 시즌중 야반도주라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며 LG를 큰 위기에 빠트렸다. 반면 현대는 맥도웰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며 왕조를 구축 KBL을 대표하는 명문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눈빛만 봐도 척척, 환상의 콤비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당시 현대에 더 잘어울리는 선수는 블런트가 아닌 맥도웰이었다. 득점력까지 갖춘 전천후 야전사령관 이상민, 최고의 3점 슈터 조성원, 미들슛 마스터 추승균으로 구성된 조합에서 외곽 화력은 아쉽지않았다. 외국인선수가 골밑에서 활약해주며 호흡을 맞추는게 최상의 구성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만약 득점에 특화된 슈팅가드 블런트가 함께했다면 조성원, 추승균과 다소 겹쳤을 가능성이 크다. 취약한 4번 자리를 메우기위해 추승균이 포스트 수비에 내몰리거나 아님 단신인 조성원을 대신해 다른 키 큰 선수들이 중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거나 조성원, 추승균의 공격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조성원의 출장시간 감소는 불가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맥도웰의 존재로 인해 골밑이 튼튼했기에 수비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성원이라는 칼을 마음놓고 쓸 수 있었다.
블런트도 영리한 선수인지라 이상민과 함께 했다면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공격의 상당수가 자신이 볼을 잡고 개인기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이다. 반면 맥도웰은 주고 빠지고 받아서 넣는 등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지않다. 이상민이 볼을 잡으면 언제든지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빈 공간을 잘 찾아다녔고 자신의 공격이 여의치않다 싶을 경우 빼주는 플레이도 잘했다.
특히 속공 상황에서의 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이상민이 빠르게 치고나가면 맥도웰 또한 큰 덩치에 걸맞지않게 잘 따라 들어왔다. 단단한 탱크가 자동차같은 속도로 내달리는지라 상대 수비진 입장에서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상민의 손을 떠난 공이 맥도웰에게 건네지면 여지없이 한골이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시선이 몰린다 싶으면 외곽의 조성원, 추승균에게 허를 찌르는 패스가 들어가 3점슛, 미들슛 등이 터지기 일쑤였다.
맥도웰의 진짜 무서운 점은 단순히 힘만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외모와 다르게 영리하게 게임을 풀어나갈줄 알았다. 우격다짐으로 골밑슛을 성공시키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다양한 훼이크 동작을 통해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유려한 페이스업 스킬로 부드럽게 득점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미들슛 등 슈팅력도 나쁘지 않았으며 준수한 시야를 바탕으로한 패싱플레이도 수준급이었다. 때문에 이상민은 맥도웰에게 주는 척하면서 다른 동료를 이용하거나 아예 자신이 직접 득점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역으로 맥도웰의 패스를 받아 공격을 성공시키는 플레이도 종종 펼쳐냈다. 무엇보다 오랜시간 콤비로 활약하다보니 눈빛만봐도 다음 동작이 척척 이어질 정도로 호흡이 좋았다는 부분이 최대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