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개발, 상업화 동시에 노려라” 美·中 양자 연구 이끄는 한인 석학의 조언
미·중, 정부 주도로 양자 산업 생태계 갖췄으나 활용 방안은 미흡
“양자 기술 수요, 정부 투자로 만들어 줘야”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양자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각각 양자 컴퓨터, 양자 통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두 나라가 양자 기술을 선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양자 기술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이뤄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다.
한국은 양자 기술의 후발 주자로 이들을 따라잡기 위한 투자를 최근에야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선도국을 따라잡기 위한 투자만으로는 양자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한국의 양자 산업이 자생적인 생태계를 갖추려면 연구뿐 아니라 개발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과 투자도 함께 필요한 시기다.
김정상 미국 듀크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와 김기환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달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세계 한인 과학기술인대회’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상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지내고 세계 최고 민간 연구소인 벨연구소에서도 근무했다. 양자컴퓨터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증시에 상장한 아이온큐의 공동 창업자이자 이온트랩 양자컴퓨터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김기환 교수도 마찬가지로 이온트랩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서울대와 인스부르크대, 메릴랜드대를 거쳐 지금은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작년까지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정상 교수와 김기환 교수는 양자컴퓨터 연구를 선도하는 미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한인 과학자인 셈이다.
김정상 교수는 인터뷰에서 “미국은 양자 기술 분야에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며 “2018년에는 양자 특별법을 만들어 연구 프로젝트, 인력 양성에 적극 투자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정부의 투자는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구글, IBM이 양자 컴퓨터 개발에 나섰고 관련 스타트업도 활발히 창업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양자 컴퓨터 시장은 2022년 5억8300만달러(약 7630억원)에서 2030년 90억달러로 15배 가량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양자 통신에 집중 투자하며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중국 기업정보 플랫폼 치차차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중국 내 양자통신 관련 기업은 2만428곳에 달한다. 김기환 교수는 “양자 통신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자생적인 생태계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룬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양자 기술 산업에서 따라가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함께 활용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수준이 급격히 발전한 것과는 다르게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산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김정상 교수는 “현재 양자 산업은 기술을 제공하는 공급자와 활용하는 사용자 중에서 공급자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상태”라며 “양자 기술의 활용 방안을 찾는 데에는 특별히 앞서가는 나라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양자 기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정부가 기초과학을 산업 기술로 전환하는 데 기업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도록 적절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교수는 “중국에서는 금융, 국방 분야에서 이미 양자 통신의 상용화가 이뤄졌다”면서 “다만 양자 통신의 활용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더 넓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양자 기술을 주제로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뤄진 미래과학기술 발표 세션에 참여한 국내 과학자들도 같은 부분을 지목했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단장은 “현재 양자 기술 플랫폼으로 초전도, 이온트랩, 광자가 언급되지만 이들은 강점을 가진 활용 분야가 모두 다르다”며 “과연 한국이 필요한 양자 기술의 응용 분야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재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는 “홍정기 포항공대(포스텍) 교수와 황원영 전남대 교수가 이미 수십년 전 양자 정보 기술의 기본 이론을 만들 정도로 한국은 양자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면서 “지금까지는 남들이 이미 성공한 분야에 투자해 이를 따라갔다면, 이제는 한국도 미지의 영역에 적극 투자해 선도국을 앞지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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