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머피의 경고로 대비하는 제조물책임(PL)
경영에서도 머피가 경고한대로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야기할 최악의 결과에 대해서는 늘 대비해야 한다. 약 4년 전 미국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간 한 중년 남자가 바닥이 미끄러워 낙상을 당했다. 그 사고로 허리를 다쳤고, 수술을 했으나 대장에 천공까지 생겨 수술비만 해도 9억원이 넘게 들었다. 그는 패스트푸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법원은 치료비, 정신적 손해 그리고 미래 소득 상실분까지 총 103억원(780만달러)을 배상하라고 최근에 판결했다. 패스트푸드사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에 제대로 걸린 것으로 참 재수 없는 사고라고 생각할 것이다. 낙상과 대장의 천공은 전혀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미끄러운 바닥이 야기한 최악의 결과였다.
미국에서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점포주는 보험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CGL이라 불리는 영업배상책임보험이다. CGL은 Commercial General Liability 또는 Comprehensive General Liability의 약자이며, 이는 특정 공간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한 타인의 신체나 재산상의 손해배상금을 커버하는 포괄적 배상책임보험이다.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니 크던 작던 물리적 영업 장소 또는 건설, 시공 공간을 가진 사업체는 이 CGL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최악의 사고를 대비하는 것이다.
어느 점포에 야음을 틈타 도둑이 침입을 시도하였다. 그는 옆 건물에서 지붕을 타고 침입하다가 지붕이 무너지는 바람에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도둑질에는 실패했지만, 그 점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지붕은 사람이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 도둑의 주장이었다. ‘소송천국’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미국이 ‘소송천국’으로 발전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부정적인 흑역사는 아니다. 그것은 거대 기업과 자본가에 맞서는 힘없는 개인 소비자를 위한 법리의 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한 부작용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소비자 안전을 위한 혁명적인 법리가 ‘PL’(제조물책임; Product Liability)이다. 이는 제조물(Product)의 결함(Defect)으로 인하여 신체,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 그것의 생산 및 유통에 관여한 자에게 부과하는 민사상 배상책임을 말한다.
여기서 ‘제조물’이란 제조 또는 가공된 동산을 의미하며 토지, 건물, 전기, 열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제조물이 아니다. 결함은 제조상 결함, 설계상 결함 그리고 경고와 지시상의 결함으로 나눌 수 있다. 제품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PL 법리의 기본 목적은 소비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1916년부터 결함 있는 제품으로 인하여 신체상,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 소비자를 위해, 결함과 그것을 만든 제조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판례를 만들어 내면서 PL 법리를 발전시켰다.
1963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Greenman Case에서 “제조기업의 과실(Fault)이나 보증(Warranty)이 없더라도, 공공정책(Public Policy) 상 그 제품의 내재적 위험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조기업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판결을 냈다. 그것이 이른바 ‘엄격책임론(Doctrine of Strict Liability)’이며, 이후 각국 ‘PL법(제조물책임법)’의 기본 법리가 되었다. 엄격책임론은 제품에 결함이 있고 그것이 신체 및 재산상 피해의 원인이면, 제조자는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무과실 책임’을 제도화 한 것이다.
1980년대 말 한국산 소형 자동차가 미국에 수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차의 별명은 ‘조랑말’이었다.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구의 한 미국인이 야간에 ‘조랑말’을 타고 시속 120Km 정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 상의 낙하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피하고자 핸들을 급히 꺾었다. ‘조랑말’은 도로와 도로 사이의 중간지대(Median)로 들어 갔다가 튀어나오면서 공중에 떠서(Airborne) 회전하다가 반대편 차선에 떨어 졌다. 그 공중 회전 중에 운전자는 차에서 튕겨 나와(Ejected from the car) 반대 차선에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죽지는 않았다. 야간이었으므로 다른 차가 도로에 떨어져 있는 운전자를 피하지 못하고 치었다. 그래도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앰블런스가 와서 운전자를 싣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큰 트럭이 앰블런스에 정면 충돌했다. 결국 ‘조랑말’ 운전자는 안타깝게도 병원 도착 직전 앰블런스 안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자동차 사고에서 발생 가능한 불행한 상황이 우연히 연속된 것이고, 머피의 법칙이라면 최악의 사태이다.
사망자의 가족은 사고 당시 ‘조랑말’ 운전자가 안전(Seat)벨트를 매고 있었으나, 결함으로 인하여 거구를 차안에 잡아 주지 못했고, 그 결과 Eject 되었다고 주장하며 PL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공방의 핵심은 간단했다.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맺다는 것이 입증되면 ‘조랑말’ 메이커는 PL 법리에 따라 가족에게 배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운전자는 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다. 만일 안전벨트를 맺었다면 밸트에 잠긴 자국(Locking Mark)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조사 결과 없었다. 결국 운전자 과실로 안전밸트를 안 맺다고 인정되어 PL 소송은 종결되었다.
미국에서 엄격책임론에 근거한 PL 소송에서 제조사가 패소하여 천문학적 숫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진 사례는 수두룩하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J사의 베이비파우더 제품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주장으로 PL 집단소송을 당했다. J사는 원고 7만여명에게 약 12조원(89억 달러)을 들여 배상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위험을 내포한 PL 소송에서 메이커의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해주는 것이 ‘PLI(제조물책임보험; Product Liability Insurance)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7월부터 PL 법이 시행되었으므로 많은 기업들이 이 PLI에 가입하는 Risk Management를 하고 있다. 특히 PL의 원조인 미국으로 공산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그 제품의 위험 정도를 평가하여 PLI를 구매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PLI는 보험사들이 그 인수를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대형 소송 한 건에도 보험사가 흔들릴 정도이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지불할 보험금 총액의 한도를 미리 정하는 것이 관행이다. 자동차, 기계, 전기제품, 항공기, 약품 등의 PLI 가입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보험사들은 당해 제품의 설계에 이용 가능한 최신 기술의 반영 여부, 품질관리, 과거 리콜(Recall)이나 클레임 이력 그리고 제조사의 PLP(제조물책임 예방; Product Liability Prevention) 노력과 그 시스템을 일일이 체크한 후 인수 여부를 결정한다.
PL 소송을 당하였을 경우 그것을 잘 방어하여 기업의 신용과 명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PLP이다. PLP를 위해 각 기업은 여러가지 노력을 종합적으로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제품의 안전에 관련된 설계나 사양 변경은 신중히 하고 그 의사결정 과정을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록도 품질관리의 한 부분인만큼 자세하고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는 데, 그 기록 중에 원가절감을 위해 안전을 희생했다고 조금이라도 의심 받을 만한 내용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원가절감 또는 가격인하를 위해 안전성이 약간 떨어지는 부품이나 설계 방안을 채택했다는 기록이나 내부자 증언은 추후 PL 소송의 방어에서 치명적이다.
결론적으로 PL에서 경영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머피의 경고이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반드시 잘못되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언제든지 나타난다.” 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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