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없는 살인사건 된 '대전 영아사망'…유죄 입증 가능할까
"법정서 진술 뒤집을 가능성도 고려해야"…경찰 '자백보강법칙'에 기대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김솔 기자 = 4년 전 아기를 출산한 후 수일간 방치해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던 '대전 영아 사망' 사건의 피의자가 "아기를 살해했다"고 진술을 바꾸면서 경찰이 기존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살인 혐의로 변경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을 송치할 때까지 피해자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결국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 된 셈인데,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출생 미신고 영아' 전수 조사가 이뤄지면서 경찰의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이와 비슷하게 피해자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이번 사건의 수사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돌연 뒤바뀐 진술…경찰, 살인 혐의 적용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7일 이 사건 피의자 20대 여성 A씨에게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를 적용,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A씨는 2019년 4월 말 대전의 한 병원에서 남자아기를 출산하고, 한 달여 뒤인 6월 초에 퇴원해 당시 주거지 인근 대전 한 하천 변에서 아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초 수원으로 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달 30일 수원 거주지서 체포 직후 최초 진술에서는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기를 당시 혼자 살던 빌라에 홀로 두면서 분유를 제대로 먹이지 않는 등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진술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아기가 숨졌고, 이에 따라 시신을 집 근처에 묻었다고 했다.
이후 A씨는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하다가 지난 2일 구속된 이후 조사에서 아기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A씨 진술에 따르면 그는 사건이 발생하기에 앞서 사귀던 남자친구의 아기를 임신했으나, 임신 사실을 모른 채 이별했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안 A씨는 병원에서 출산한 뒤 아기를 데리고 퇴원했는데,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탓에 퇴원 길에 아기를 살해하고 대전의 한 하천 변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는 "출산 후 집으로 데려온 아기가 숨져 땅에 묻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번에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같은 진술을 유지하다가 나중에야 범행 사실을 사실대로 털어놨다.
'시신 없는 살인' 유죄 판결할 수 있을까
경찰은 A씨의 진술이 뒤바뀜에 따라 면밀한 검증 작업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가족 및 주변인 진술 등을 폭넓게 조사해 A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술을 바꾼 점에 주목했다. 통상의 진술 번복은 피의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하는 쪽으로 이뤄지는데, 이번 경우는 그 반대여서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다만 경찰은 피해자의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현행법은 살인 혐의 적용과 관련, 피의자가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갖고 범행했다는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경찰은 살인죄를 입증할 가장 확실한 증거인 시신이 없는 상태로 혐의를 변경 적용한 것이다.
'시신 없는 살인' 사건에서의 유죄 입증은 쉽지 않다.
대법원은 2008년 피해자를 차로 납치해 모처에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행 전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 대해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사망 사실이 선결적으로 증명돼야 한다"며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낸 바 있다.
대법원은 또 2005년 동거녀의 언니를 납치 살해한 피고인에 대해서도 "살인의 개연성이 커도 시신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환송했다.
반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고유정 사건'의 경우 피해자인 전 남편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 단계가 남아 있는 만큼, 아기의 시신을 찾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추가적인 확실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이 있어 현 단계에서 유·무죄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전국 곳곳서 영아 시신 수색 중…'대전 영아사건' 주목
앞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출생 미신고 영아' 전수 조사가 한창인 가운데 전국에서 이번 '대전 영아 사망'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15년 태어난 아기를 친부와 외할머니가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용인 영아 살인' 사건, 친모가 8년 전 영아 시신을 암매장했다고 진술한 '부산 영아 암매장' 사건, 생후 5일 된 아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거제 영아 살해' 사건 등 역시 경찰이 피의자에 대해 아동학대치사나 살인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하지만 이들 사건 역시 시신 매장 시점이 한참 지나 시신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가 이날 송치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인 '대전 영아사망' 사건은 이들 후속 사건에 일종의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살인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인 시신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공소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자백을 뒷받침할 여러 증거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돌연 혐의를 부인하거나 진술을 번복하는 등 변수가 생길 수가 있으니 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번과 같은 영아 사망 사건의 경우 어차피 시신을 찾았다고 해도, 시신 크기가 작고 시일이 많이 지나 부검을 통해 유의미한 증거를 찾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비록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지만, 친모의 자백이 나왔고 병원 기록 등의 증거가 확보됐으니 유죄 판결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고 했다.
경찰은 '자백 보강 법칙'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백에 대한 보강 증거는 범죄 사실의 전부 또는 중요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아도, 자백이 진실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또 직접 증거가 아닌 간접·정황 증거도 보강 증거가 될 수 있고, 이들 증거가 서로 조화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 유죄 증거가 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단계에서의 짧은 구속 시한 내에 최대한 많은 증거를 확보하려 노력했다"며 "피의자의 진술이 구체적이어서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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