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사태 좌경분자 소행 변명은 거짓… 김일성이 ‘南 교란시켜라’ 직접 지령”

정충신 기자 2023. 7. 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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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청와대를 기습할 당시 공작원이었던 김신조(81) 목사는 7일 "1·21사태가 군부 좌경맹동분자들 소행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김일성이 남조선 공산화를 위해 '남한을 교란시켜 전선 없는 전쟁을 하라'는 지령을 직접 하달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일성 지령으로 1967년 8월 항일투쟁 동지 김책의 아들 김정태 민족보위성(1972년 인민무력부로 개칭) 정찰국장에게 총정찰국 124군 특수부대 창설을 지시했다"며 "특수부대 창설에는 당시 국방상에 해당하는 김창봉 민족보위성 부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오진우 총정치국장, 허봉학 중앙당 연락부 총국장, 최광 인민군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가 모두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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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조 목사, 통일부 공개 남북회담문서 자료관련 인터뷰
“金, 124군특수부대 창설 지시
김창봉·오진우 등 軍수뇌 관여
당시 박대통령 암살 성공하면
요원1000명씩 육·해·공 침투
단기간에 南점령 계획 세웠다”
사태 전말 밝힐 시나리오 완성
“죽기 전에 영화로 만드는 게 꿈”
김신조 목사가 지난 2020년 8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서울성락교회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청와대를 기습할 당시 공작원이었던 김신조(81) 목사는 7일 “1·21사태가 군부 좌경맹동분자들 소행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김일성이 남조선 공산화를 위해 ‘남한을 교란시켜 전선 없는 전쟁을 하라’는 지령을 직접 하달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일성 지령으로 1967년 8월 항일투쟁 동지 김책의 아들 김정태 민족보위성(1972년 인민무력부로 개칭) 정찰국장에게 총정찰국 124군 특수부대 창설을 지시했다”며 “특수부대 창설에는 당시 국방상에 해당하는 김창봉 민족보위성 부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오진우 총정치국장, 허봉학 중앙당 연락부 총국장, 최광 인민군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가 모두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통일부가 전일 공개한 남북회담문서 자료에 따르면 김영주 부장이 1972년 5월 2일 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군부 좌경맹동분자들이 조직했고 우리는 후에 알고 다 처벌했다”고 변명했다. 실제 김창봉 부장은 1·21사태 직후인 1968년 2월 3일 최광·오진우 등과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김창봉은 김영주 부장이 2인자로 등극하는 것에 반발하다가 1969년 1월,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4기 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허봉학과 함께 군벌 관료주의자로 비판받고 숙청당했다.

김 목사는 “1960년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250달러로, 남한의 70달러보다 3배 이상으로 앞섰다”며 “박 대통령이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위기감을 느낀 김일성이 ‘남조선이 더 발전하기 전에 장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김일성은 6·25전쟁 실패를 교훈 삼아 장기전 대신 단기(속도)전을 수행하기 위해 1만 명 규모의 124군 특수부대를 창설, 박 대통령 암살 후 남한 전국 8도에 특수요원 1000명씩 육·해·공으로 침투시켜 단기간에 서울·대구·부산·대전 등을 동시 점령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백공일(101)’ 암호만 대면 124군 특수부대원들은 고위층만 출입하던 평양 옥류관을 ‘프리 패스’할 정도로 아무도 못 건드렸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김 목사는 “자수 후 심문 과정에서 북한 124군 특수부대 창설 및 후속 침투 계획을 당시 백선엽 예비역 대장과 방첩부대에 폭로했다”며 “이후 1968년 10월 30일 울진·삼척 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은 124군 소속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21사태 전말을 밝힐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죽기 전에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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