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가스라이팅 꾀하는 日 막장 연애 게임
여러분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시나요? 일부러 히로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반응을 수집하거나, 방금 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엔딩을 본 히로인을 뒤로 한 채 별 생각 없이 바로 다음 히로인 루트에 돌입하거나 하지 않나요?
물론 저도 그렇게 플레이합니다. 현실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이건 세이브와 로드가 존재하는 게임이니까요.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다면 퀵 세이브를 활용해 즉시 이전으로 돌아간 후 이벤트 CG 수집률 100%를 띄워놓고 뿌듯해 하죠.
화면 너머의 그녀에게 물론 진심입니다. 덕질 개념으로 관련 굿즈를 구매하거나 후일담 DLC를 사는 데 망설임 없습니다. 그래도 모니터 안으로 넘어갈 순 없죠. 화면 속 주인공은 히로인과 엔딩을 맞이하고, 당신은 참 좋은 이야기였다고 만족하며 다른 즐거움을 찾아 떠납니다.
만약 화면 너머 그녀가 플레이어인 당신의 배신을 눈치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니트로플러스의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입니다.
※ 이 리뷰는 중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 : 연애 시뮬레이션
출시일 : 6월 8일
개발사 : 니트로플러스
플랫폼 : PC (스토브인디)
■ 자칭 히로인, 소꿉친구와 함께 하는 청춘 로맨스
'매일은 계단처럼, 계단이니 갈림길은 없고, 그때 그랬으면 하는 후회는 무의미하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실패한 후에나 생각나는 찌꺼기 같은 말이다'
평범한 고등학생 스즈키 신이치는 눈에 띄는 일 없이 무색무취의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재색겸비 문무겸전으로 유명한 학교의 아이돌 소네 미유키와는 소꿉친구지만,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지 오래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아케보노 유타로에게 불려 올라간 옥상에서 반에서 붕 떠 있는 전파 소녀 무코우 아오이와 만납니다. 그녀는 현실은 게임, 자신은 공략 히로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찌릿찌릿해?'라는 말과 함께 신이치에게 기습 키스를 시도하는 아오이. 다행히 그 시도는 갑자기 나타난 미유키에 의해 미수로 그쳤죠.
성에는 비정상적으로 개방적이지만 감정에 서투른 아오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신이치는 미유키에게 그녀와 친구가 되어 달라 부탁합니다. 과거의 외톨이였던 자신을 비추어 본 미유키는 처음엔 부탁으로 시작했지만 이윽고 진심으로 아오이를 돕고자 하죠.
셋이 친구가 된 뒤 점점 아오이는 사람다운 감정을 가지게 되고, 미유키도 신이치와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가까워지게 됩니다. 과연 이들의 연애 전선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저버린 죄
사실 이 게임은 2013년 발매 당시 미연시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충격적인 전개로 유명했습니다. 피투성이 배트를 든 채 미소 짓는 히로인 '소네 미유키'는 그 자체로도 굉장한 임팩트를 자랑하지만, 더욱 압권인 것은 게임 내에서 새빨갛게 물드는 연출과 그녀의 대사 그 자체거든요.
"영원의 사랑을 맹세한 당신이 나를 배신하고 아오이 루트로 진행했기 때문이야. 네가 아니라, 첫 루트에서 내게 영원의 사랑을 맹세한 당신. 이제부터, 잔뜩 복수해 줄게"라는 말을 아바타인 신이치가 아니라 플레이어인 내게 직접 건네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플레이는 미유키 이외의 공략이 불가능하며, 아오이 루트에서 탈선하거나 반복해서 미유키 루트를 플레이할 경우 사건의 진상에는 영영 닿을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미유키의 분노는 일견 불합리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마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아오이 루트에 진입했을 거예요. 맹숭맹숭하게 끝난 미유키 루트를 보면 아오이 루트가 진상과 관련된 루트겠거니 생각하게 되거든요. 게다가 필사적으로 아오이 루트 진행을 저지하는 미유키의 행동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플레이어의 심리를 절묘하게 꿰뚫었다는 점에서 미유키의 복수는 나름의 타당성과 목적성을 가집니다. 게임은 게임이니 양심의 가책까진 아니더라도, "얘 입장에선 이럴 수밖에 없겠다"하고 자연스레 납득됩니다.
이후에는 세이브 데이터를 다 날려버리고, 강제로 이벤트를 진행시키거나, 무한히 상황을 반복시키며 플레이어인 내게 사랑을 갈구하는 미유키를 볼 수 있습니다. 좋아한다고 말해줘도 네게는 클릭 한 번에 지나지 않는다며 부정하고, 그러면서도 화면 너머의 당신에게 닿고 싶다며 애걸하죠.
"이건 현실이니 둘 모두를 선택하는 선택지는 없다. 그건 아오이나 미유키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주인공 신이치가 직접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네죠. 그 말대로 누군가의 진엔딩 후에는 선택한 히로인의 CG와 이벤트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이 게임의 진행도는 50%가 최대입니다.
게임 진행 중 핸드폰에 치트 코드를 입력하면 둘 모두의 CG와 이벤트가 개방됩니다. 다만 게임 진행은 영영 막히게 되는데요. 결국 히로인과의 진짜 연애를 선택하느냐, 데이터나 수집품으로서 게임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단 한 번뿐인 사랑을 화면 너머 당신에게
등장 인물이 작품 속 세계가 픽션이라고 인지하거나, 픽션 속 픽션인 극중극을 중점으로 다루는 작품을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데요.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은 메타 픽션 요소 자체가 중대 스포일러이며 게임의 핵심을 꿰뚫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언더테일, 두근두근 문예부!, 원샷 등 메타 픽션이 게임계의 핫한 키워드가 된 지는 좀 됐죠. 전지적 관찰자로서 작 중에 개입하기 어려운 다른 장르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의 조작을 요구하기에 장르적 상성이 잘 맞는 편입니다.
이러한 메타 픽션적 요소가 독자의 몰입을 저해하거나 설정만을 위한 억지 전개로 이어지는 일도 많습니다.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 또한 예외는 아닌데요. 특정 히로인의 엔딩이 진엔딩 취급받는다든가, 배신을 강제하는 시나리오적 구조, 스트레스 요소인 시스템적 제한 등 여러 비판점들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한 번 뿐인 진실한 사랑을 호소하는 미유키와 아오이의 눈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호불호가 정말 심한 키워드와 장르지만 취향에 맞는다면 여운이 굉장히 오래 가실 거예요.
그동안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은 19금 에로게, 미번역이라는 에베레스트 급 진입 장벽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는데요. 이번 스토브 인디에서 정식 한국 버전이 출시되었으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꼭 한 번은 플레이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1. 준수한 그래픽과 풀 더빙 보이스
2. 몰입감 넘치는 충격적 전개
3. 검열로 인한 부족한 서사
1. 상대적으로 미유키에 치중된 분량
2. 무한 루프로 인한 지루함
3. 취향이 갈리는 메타 픽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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