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 없는 한국농구...최고스타조차 못알아 봐”
공정한 판정·평가 위해 매경기 집중
실추된 위상, 이기는 게임해야 회복
국내 스포츠에서 최초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팀이 있다면 바로 1990년대 초반 연세대 농구부일 것이다. ‘대학 교수’로 불렸던 승부사 최희암 감독이 이끌었던 연세대는 오성식·정재근·문경은·이상민·서장훈·우지원·김택훈·김훈·석주일 등 실력은 물론 연예인 뺨치는 외모로 인기를 누렸던 선수들이 있었다.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의류 광고에 출연한 대학 스포츠팀이 언제 또 있었을까. 이후 조상현·조동현을 거쳐 최근에는 허웅·허훈 형제까지 꾸준히 스타선수들을 배출한 팀이다.
최희암 사단 부동의 스몰포워드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 최고의 3점 슈터 중 한 명이 바로 문경은(51)이다. 이충희·김현준·최철권 등에 이어 한국의 외곽을 책임졌던 문경은은 현재 한국농구연맹(KBL) 경기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부임해 9개월 여가 흘렀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쌍커풀을 닮아 ‘람보슈터’로 불렸던 문경은.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지금은 세월이 흐른 만큼 과거보다 푸근한 인상이 됐지만, 한때 오빠부대의 사랑을 받았던 외모는 여전하다. “요새도 마트 시식코너에 제가 가면 안자르고 그냥 주십니다”라며 너스레를 떨만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초 단위로 숨 막히는 승부가 오고 가는 코트를 떠나 조용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농구 행정가로 변신한 문 본부장을 만나봤다.
경기본부장은 KBL 심판진의 배정 및 평가를 하며 경기가 문제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잘해야 본전이고, 혹여 실수라도 나오면 많은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다. 그는 “본전도 아니다. 잘했어도 불만을 갖는 팀은 나오기 때문에 항상 공정하고 정확한 판정을 하려고 심판들과 매 경기 집중한다”고 말했다.
전임자들도 그와 같은 지도자 출신이었기에 문 본부장이 달리 보여줄게 있을까 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는 “내가 좀 더 젊다”고 웃으며 “전임자들이 한 일들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시스템을 자리 잡게 하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포스트시즌에는 평점이 더 높은 심판들을 위주로 배정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심판은 다른 경기에 배치하는 등 신경을 썼다. 냉정하게 비칠 수도 있지만, 평점이 낮은 심판은 재계약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는 “(경기본부장이 된 후) 심판 고과를 최대한 공정하게 하는 데 역점을 뒀다”며 “소수점 4자리까지 평점이 매겨진다”고 말했다.
스타 출신 선수가 행정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사실 타 종목에서도 흔치 않다. 그 역시 낯선 행정 업무가 쉽지는 않았다. 그는 “출근하고, 서류 작업하고, 회의하고.... 이런 일이 익숙치 않아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며 “다만 감독을 맡는 동안 30여 명의 스태프를 이끌어야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문 감독은 업무가 많지 않은 비시즌에도 직원들 눈을 의식해 일이 없더라도 일단 출근해서 할 일을 찾았었다.
과거 선수로서 영광의 경험이 많은 문 본부장. 국내 최고의 3점슈터 문경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는 “이충희 선배의 플레이를 보며 꿈을 키웠다”면서도 그에게 영향을 많이 준 선배로는 이충희의 라이벌이었던 김현준을 꼽았다. 그는 “김 선배가 고교 선배이다 보니 학교에 자주 와 농구 얘기도 해주고 대표팀 유니폼도 건네주고 하면서 많은 영향을 줬다”고 회상했다.
문경은은 “지도자 복이 참 많은 선수”라고도 했다. 학교폭력이 흔했던 80년대, 학교 체육이 대부분 강압적이고 상명하복의 선후배 문화가 만연했지만, 문경은은 경기 외에 힘든 점은 별로 없었다. 그는 “장덕영, 한춘택 등 중·고교 선생님들은 선수들을 인격체로 대해줬고 농구가 즐겁다는 걸 알려줬다”며 “지방에 전지 훈련을 가면 연습이 끝난 뒤에 한자도 가르쳐주셨다. 훈련 때는 절대 손찌검을 안하셨는데, 수업 빠지고 땡땡이 치면 눈물이 빠지도록 혼을 내셨다”고 했다.
그의 스승 중에 최희암 전 연세대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교 농구를 하던 나에게 성인 농구를 가르쳐 주신 분”이라며 “입학 후 학부모 참관 훈련 때도 잘못하면 인정사정 없이 혼을 내셨다”고 말했다. 당시 젊은 혈기의 문경은은 최 전 감독에게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최 전 감독은 “1학년인 네가 주전으로 뛰면 선배 중 누군가 벤치에 앉아야 한다”며 “내가 너를 ‘금이야 옥이야’ 하면 원팀이 되겠니”라고 반문했다. 문경은은 최 전 감독의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화술에 넘어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문경은은 농구 인생의 소울메이트로 이상민 KCC 코치를 꼽았다. 그는 “대학 1년 후배이고, 대표팀에서도 오래 손발을 맞췄다”며 “(이상민과는)말이 필요없다. 눈빛만 주고받으면 패스가 오고, 눈이 맞으면 밥 먹으러 나가고 그랬다”고 말했다.
문경은의 현역 시절과 달리 지금은 한국 농구의 위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평가들이 많다. 그 역시 한국 농구의 추락을 몸소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SK 감독 시절 우승 직후 그룹에 주전 선수와 본사에 인사하러 들어갔다가 근처에 식사를 하러 갔다”며 “당시 KBL 최고 선수였던 김선형과 함께 길을 걷는데 아무도 선형이를 못 알아보더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겠지만, 지금은 알아보지도 못하니 충격을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는 이어 “어떤 지인은 ‘인기도 없는데 농구 선수 연봉이 뭐 그리 많냐’고 그러더라”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농구의 위상 하락에 대해 문경은은 ‘절박함’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대학팀이 프로팀을 잡는 이변도 연출됐고, 매년 전국에서 농구 좀 한다는 선수들 이름도 자주 들려왔다”며 “내가 감독할 때가 되니 그런 정도로 특출난 선수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 대표팀에 선발돼 태릉선수촌에 들어갔을 때 하키선수들 훈련 모습을 보고 기가 질린 적이 있는데, ‘저런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거구나’하며 감탄한 적이 있었다”며 “예전만큼 선수들이 절박함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경은은 다만 지금 선수들이 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기적’을 보여준다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농구의 인기가 살아나려면 이기는 걸 많이 보여줘야 된다”며 “그래야 (농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것 아니겠나”고 반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래도 선수들 다 열심히 뛰고 있다.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농구팬들이 계속 아껴준다면 다시 사랑받는 스포츠로 탈바꿈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계속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시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찬 경기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문경은 본부장을 상상해본다.
김성진 선임기자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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