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정책선회 한 달 만에…튀르키예 증시 복귀한 외국인
리라화 약세 여전…"전술적 투자에 불과" 지적도
‘역주행’ 통화 정책과 대지진 여파로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수년 동안 외면돼 왔던 튀르키예 경제가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리라화 가치 급락과 함께 썰물같이 빠져나가던 외국인 자금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월가 출신들로 채워진 새 경제팀이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한 셈이다. 그간 튀르키예 서민 경제의 숨통을 조여 온 인플레이션도 완화 추세를 지속했다.
한달새 외국인 자금 1.3조 순유입
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어치의 튀르키예 주식을 사들였다. FT가 튀르키예 중앙은행 자료에 기반해 분석한 결과 이는 2021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다. 튀르키예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된 건 6개월 만이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자리가 시장친화적 인물들로 꾸려진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시장 흐름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다.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와 UBS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메흐메트 심셰크 전 부총리를 재무장관으로 재입각시켰다. 중앙은행 총재에는 골드만삭스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하피즈 가예 에르칸을 임명했다. 심셰크와 에르칸은 취임 당시 “경제 위기를 불러온 ‘비상식적’ 정책을 폐기하고 ‘이성적’인 경로를 되찾겠다”는데 입을 모았다.
거듭된 리라화 약세로 튀르키예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점도 투자 유인 요소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대선이 치러진 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1달러당 20리라 선에서 이날 기준 26리라 선까지 밀렸다. 1달러와 교환되는 리라 액수가 올랐다는 건 리라화 가치가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리라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시장 개입 정책을 철회하면서 리라화 가치 하락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튀르키예 증시의 벤치마크로 꼽히는 ‘보르사 이스탄불(BIST)100’ 지수는 달러화 기준 올해 들어서만 20%가량 떨어졌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 집계에 따르면 BIST100지수는 작년 한 해 동안 196.57% 급등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지만, 주가수익비율(PER)은 5배에 그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약 12배)나 S&P500지수(약 19배)와 비교하면 매우 낮다.
신흥시장(EM) 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이스트캐피털의 엠레 아카크마크 수석 컨설턴트는 “튀르키예 증시는 달러와 멀티플 양측 면에서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며 “적어도 특정 부류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되기 시작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 완화 국면도 지속
인플레이션도 식고 있다. CNBC 방송에 따르면 지난달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3.92% 올랐다.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4.84%를 밑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38.21%로, 역시 예측치(39.48%)보다 낮았다. 이 수치는 지난해 10월 85%까지 치솟으며 정점을 찍었던 바 있다.
시장에선 심셰크 장관과 에르칸 총재가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 여기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신념을 꺾을 수 있을 거란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이미 지난달 연 8.5% 수준인 기준금리를 15%로 2배 가까이 올렸고, 개인‧기업의 달러 보유 비율을 제한하는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한 튀르키예 경제학자는 FT에 “통화 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튀르키예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대선 이후 나타난 정통 경제 정책으로의 회귀 움직임은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라화 가치 하락세에 따른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튀르키예 증시 유입 세력은 위험 회피 성향이 큰 전술적(tactical) 투자자들에 한정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튀르키예 투자 자문사인 OMG 캐피털 파트너스의 무라트 굴칸 최고경영자(CEO)는 “매수 자금 중 일부는 ‘숏커버링(공매도한 주식을 되갚기 위한 환매수)’이거나 해외 증시로 빠져나갔던 내수 자금의 귀환에 불과할 수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전략적(strategic) 투자자들이 튀르키예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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