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노동위의 올바른 역할을 기대하며

2023. 7. 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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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노사 간 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정, 판정해 산업평화 정착에 기여한다.”

노동위원회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설립 및 운영의 목적이다.

그러나 과거 수년간 노동위원회가 법과 원칙, 공정을 바탕으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노사 간 이견을 조정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심지어 노동위원회가 원청기업의 사용자성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 판례까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자 ‘노동위원회 리스크’라는 오명까지 생겼다.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 노동위원회가 대안적 분쟁 해결 등 노사 갈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공정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노동위원회가 과거의 논란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본연의 역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더욱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선 노동위원회는 노조가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조정을 신청한 경우와 노사 간 충분한 교섭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행정지도 결정을 내려 무분별한 파업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 법은 파업에 앞서 반드시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의 조정 대상은 노사가 근로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더는 자주적 교섭에 의한 합의의 여지가 없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을 파업을 위한 요식 절차로 활용하고 있어 조정 절차가 형해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민주노총의 7월 총파업이 대표적인 예다.

민주노총의 7월 총파업은 ‘정권 퇴진, 노동 개혁 저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 등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파업으로 목적상 불법 파업이다. 또한 민주노총 소속 일부 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치지 않고 파업에 돌입하거나 불과 몇 차례의 교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예고한 총파업 일정에 맞추기 위해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 절차적으로도 흠결이 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교섭이 미진하거나 교섭 대상이 아닌 요구를 내세운 조정 신청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반드시 행정지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노조가 행정지도 결정에도 파업을 강행하면 원칙적으로 법 위반이다.

과거 노동위원회는 행정지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20년에는 전체 957건의 조정 사건 가운데 행정지도 결정은 14건, 2021년에는 전체 1169건의 조정사건 중 18건의 행정지도에 그쳤다.

노동위원회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노동계의 잘못된 관행이 더욱 확대된다면 산업 현장에서 대화는 사라지고, 힘을 앞세운 파업 만능주의만 남게 될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고 국민 일상을 위협하는 명분 없는 파업을 위한 통과의례가 돼서는 안 된다.

아울러 노동위원회는 하청노조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하는 교섭 요구에 대해 하청노조와 근로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최근 하청노조의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투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지난 2021년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 사건에서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원청기업이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하청노조와 교섭을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매우 큰 영향을 줬다.

노동위원회의 CJ대한통운 관련 결정 이후 유통, 조선, 철강 등 다양한 업종에서 하청노조가 원청기업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그리고 다수의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법 파견 논란 등으로 큰 홍역을 치른 원하청 노사관계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 논란으로 다시 한 번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원하청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혼란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제철 하청노조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금속노조 산하 일부 하청지회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이러한 혼란과 갈등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선 현재 지방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사건부터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준은 분명하다. 단체교섭은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계약의 내용을 집단적으로 형성·변경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합원과 개별적 근로계약 관계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이기도 하다.

심지어 노동위원회가 발간한 ‘조정 및 필수 유지업무 매뉴얼’에는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채용하는 계약상의 당사자로서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자로 보는 것이 판례 및 행정해석의 입장이라고 소개돼 있다.

노동위원회는 ‘과이불개(過而不改)’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지금이라도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원하청 생태계를 바탕으로 하는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우리 노사관계도 합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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