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0층 높이서 낙하하는 강철 사나이 “이래도 국가대표 아니라고”

정병선 기자 2023. 7. 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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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 한국 대신 세계연맹 인정 받아 후쿠오카 세계수영대회 출전

“고속버스 타고 오다가 대회 출전 메일을 확인하고선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습니다.”

한국 선수 최초로 2023년 FINA(국제수영연맹)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선수로 출전하는 최병화(31)는 아직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5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소망하던 꿈을 이뤘다”고 했다. 국내 유일한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가 한국 수영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가 5일 서울 중구 세실극장 옥상 전망대에서 하이다이빙 점프 포즈를 취했다. /김지호 기자

하이다이빙은 아파트 10층 높이인 27m 상공에서 뛰어내리며 승부를 거는 종목이다. 물에 착지까지 고작 3초, 물과 부닥치는 속도는 시속 96km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하이다이빙은 선수라도 보통 강심장을 갖지 않으면 엄두를 못 내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깝다. 최병화는 “우하람 등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들도 솔직히 저를 부러워한다”며 “올림픽 다이빙 종목 플랫폼은 10m지만 난 그보다 3배 이상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차원이 다른 선수다”고 웃었다. 하이 다이빙은 세계대회 종목이지만 아직 올림픽 종목은 아니다.

하이다이빙은 2013년 FINA가 바르셀로나 세계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고, 2019년 광주 세계선수권 때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35명의 선수 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국내엔 등록선수가 아예 없다. 그런 불모지서 최병화가 한국인 최초 세계대회 출전이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해병대 특수수색대 출신 최병화는 2014년 연세대(체육교육학과) 재학 중 조선일보 뉴라시아자전거원정대에 합류해 100일 동안 1만5000km 대장정을 완주했다. 대학 땐 조정(漕艇) 선수이자 철인 3종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1950년 보스턴마라톤 동메달을 차지한 최윤칠의 손자이다.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는 “훈련 중 몸이 물 측면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좌측 고막의 80퍼센트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며 “열정도 꿈도 좋지만 하이다이빙은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포츠이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뉴라시아자전거원정 당시 최병화는 바이칼호수에서 다이빙한 것이 하이다이빙 입문 계기가 됐다. 2016년 다이빙 연습장을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다이빙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세계대회 출전 꿈을 이뤘다.

그는 “하이다이빙은 세계수영대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자 시청률도 최고다”며 “관객들은 두려움 없이 뛰어내리는 선수들의 다이빙 모습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하이다이빙은 위험이 상존하며, 그 위험은 단순한 게 아니고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최병화는 “훈련 중 몸이 물 측면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좌측 고막의 80퍼센트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며 “열정도 꿈도 좋지만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포츠이다”고 했다.

그는 “여섯 살 때 마라토너 출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유아스포츠단에 가입하면서 물과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수영선수, 대학 땐 조정 선수, 해병대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최병화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 하이다이빙 운영요원이었다. “당시 타워에 올라가서 선수들 경기 지원 역할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 하이다이빙 선수가 될 테니 꼭 기억해달라고 했는데 꿈을 이뤘다”고 했다.

국내 1호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가 울릉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장면을 다중 촬영한 모습. 국내에 하이다이빙 연습장이 없어 실전 훈련을 위해선 위험을 무릅쓴 채 절벽에서 다이빙을 해야 한다. /최병화씨 제공

최병화는 후쿠오카 세계수영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지만, 국가대표 자격은 아니다. 대한수영연맹은 연맹에 등록된 선수가 아니다는 이상한 명분을 내세운다. 사실 대한수영연맹에는 하이다이빙 선수도 선수 등록 시스템도 없다. 그런데 국제수영연맹이 그의 실력을 인정해 세계대회에 초청한 것이다.

국내서 인정받지 못하고 거꾸로 국제대회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고 태극마크를 단 기막힌 상황이 됐다. 그만큼 최병화는 별종이다. 어찌 보면 연맹의 무능한 행정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연맹은 하이다이빙이 올림픽 종목이 아니어서 지원 근거가 없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최병화는 세계대회에 나가는데도 대한수영연맹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국내 훈련시설도 이용할 수도 없고 해외에서 훈련한다. 그동안 국제대회에도 자비를 들여 코치 없이 단독으로 출전해왔다.

최병화는 지난 2021년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최종 예선에 출전하려 했지만, 자격 미달로 FINA로부터 출전 불가 통보를 받은 바 있다.

2014년 10월 4일(현지시각)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원정대의 최병화 대원이 '한민족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 바이칼호(湖) 내 알혼 섬에서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3도나 됐지만, 대원들은“바이칼의 기운을 받겠다”며 얼음장 같은 물에 앞다퉈 몸을 던졌다./오종찬 기자

하지만 지난해 자신을 응원하던 아버지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절치부심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바로 유럽 전지훈련을 나섰다”며 “배고픔과 설움을 참고 지금 아니면 끝장이다는 생각으로 배수진을 쳤다”고 했다.

최병화는 지난 5월 마침내 미국서 열린 국제대회(월드컵)에 데뷔전을 치르며 기량을 인정받고 후쿠오카 세계대회에 출전권(와일드카드)을 땄다. 14일 개막하는 후쿠오카 세계대회에는 한국 수영의 간판 황선우(강원도청) 포함 선수 38명과 지도자 13명 등 총 51명이다.

하지만 최병화는 코치도 연맹의 지원도 없이 항공권을 사들고 홀로 대회에 나선다. 하이다이빙은 선수 24명이 참가해 이틀 동안 4라운드로 진행한다. 최병화는 “나 홀로 하이다이빙 선수지만 태극마크를 단 만큼 코리아를 빛내는 자랑스럽고 용감한 선수가 되겠다”며 “무엇보다 한국이 아닌 국제연맹으로부터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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