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RZ, 놀랍도록 렉서스 다운데 ‘전기차 다움’은?

강희수 2023. 7. 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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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희수 기자] ‘렉서스 RZ 450e’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탄생한 렉서스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자동차(BEV)다. 지난해 렉서스 최초의 전기차 UX300e가 우리나라 시장에도 출시됐지만 이 모델은 전용 플랫폼을 쓰지 않았다. 

RZ의 플랫폼은 BEV 전용 e-TNGA다.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가 워낙 완성도가 높고 전기차로의 확장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전동화의 ‘e’를 붙여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쓰고 있다. TNGA 플랫폼이 구현했던 저중심의 주행안정성과 편안한 승차감, 뛰어난 공간성과 효율성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의미도 담았을 게다. 전기차의 특성을 앞세우기 전에 오랜 세월 렉서스가 구축한 세계관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의지도 담았을 게다. 

차 이름 ‘RZ’에서도 ‘렉서스 다움’을 지키려는 노력이 감지된다.

‘Z’는 배출가스가 없다는 의미의 ‘Zero’에서 따왔으니 ‘순수전기차’임을 가리키고 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알파벳이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 렉서스 첫 전용 플랫폼 전기차의 성격은 죄다 ‘R’에 담았다는 얘기다.

렉서스 SUV 라인업에서 ‘R’이 차지하는 위치를 먼저 알아야겠다. R은 렉서스의 SUV 라인업에서 등장한다.

UX(Urban Crossover), NX(Nimble Crossover), RX(Radiant Crossover), GX(Grand Crossover), LX(Luxury Crossover)로 이어지는 라인업의 딱 가운데 자리에 RX가 있다. ‘Radiant’는 밝게 빛난다는 뜻이고 ‘Crossover’는 렉서스 SUV 라인업에 죄다 이 글자가 붙어 있다. X의 ‘크로스오버’는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있어 보인다. 제조사는 크로스오버라 하는데, 소비자들은 SUV로 안다. 

RX가 추구하고 있는 성격은 다원적이다. 강력한 퍼포먼스를 지니고 있음에도 럭셔리 클래스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주행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남들이 보기엔 SUV인데, 굳이 ‘크로스오버’를 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도회지에서 주로 운행하는 차량에 ‘스포츠 유틸리티(SUV)’라는 용도 설정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검열이 작동한 건 아닐까?  

렉서스의 첫 전용 플랫폼 전기차 RZ의 특성은 그 이름 안에 다 담겨 있었다.

최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열린 ‘RZ 미디어 시승행사’에는 공교롭게도 ‘5세대 RX’가 함께 등장했다. 두 차를 번갈아 가며 테스트 드라이브 하도록 했다. 마치 RZ와 RX가 왜 같은 ‘R자 돌림’인지 알아보라는 퀴즈 같았다. 

RX는 RZ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벤치마크였다. ‘Z’라는 전혀 다른 파워트레인이지만 그 성격엔 RX의 DNA가 집요하리 만큼 이식됐다. ‘부드럽지만 강한’, 상충하는 두 개념을 전기 파워트레인에서도 구현하고자 했다. 

태생이 전기차이다 보니 출발부터 강한 토크를 내게 하는 건 쉽다. RZ 450e의 제원이 최고출력(ps/rpm) 312마력(전륜 모터 150kW+후륜 모터 80kW), 최대토크 44.4kg·m이다 보니 가속페달과 함께 차가 툭툭 튀어나가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RZ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대한 출발시 토크는 자제시켰고, 가속과 함께 점차적으로 파워가 높아지게 했다. 내연기관의 토크 커브와 이질적이지 않도록 세팅한 노력이 있었던 걸까? 

주행모드가 ‘스포츠/에코/레인지’로 구성된 것에서도 유사한 의도가 읽힌다. 스포츠와 에코 모드는 딱히 새로울 게 없지만 레인지 모드는 ‘전기차가 이렇게 움직일 수도 있구나’를 깨닫게 한다. 가속 페달의 신호가 모터로 연결되는 회로를 극단적으로 지연시켜 놓았다. 이 모드라면 ‘전기차를 타면 멀미를 한다’는 예민한 탑승객들의 불편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패들시프트에 부여한 회생제동 강도 조절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의 전기차들은 패들시프트로 회생제동 강도를 최대로 조작하면 원페달 드라이빙도 가능하다.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없이 가속 페달을 밟고, 떼는 것만으로 주행과 정차가 된다. 대신 이 경우 동승자는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다.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뗌과 동시에 강력한 브레이크(회생제동)가 들어가기 때문에 급제동이 반복될 때 오는 멀미 증상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RZ는 패들시프트로 조작 가능한 회생제동 강도의 범위를 매우 한정적으로 설정해 놓았다. 원페달 드라이빙은 불가하지만, 대신 동승자들의 어지럼증은 예방할 수 있다. RZ의 ‘렉서스 다움’은 그렇게 지켜지고 있었다. 

차체의 크기는 전장-전폭-전고가 4,805x1,895x1,635mm다. 5세대 신형 RX의 4,890x1,920x1,695mm와 큰 차이가 없다. 5세대 RX보다 약간 짧고 낮다. 5세대 RX는 이전 세대(1,710mm) 보다 전고가 낮아졌다. 크로스오버와 SUV의 경계에서 크로스오버에 더 가까워졌다.

RZ는 그런 RX보다 약간 더 낮다. ‘R자 돌림’인 이유는 여기서도 확인된다. 플랫폼이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왠지 ‘RZ’를 ‘RX의 전기차 모델’로 부르고 싶어진다.

RZ의 공차중량은 2,090kg이다. 미디어 시승행사에 동원된 RX 500h F SPORT Performance의 공차중량은 2,150kg이다. BEV 전용 71.4kWh의 대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탓에 2.4리터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덩치 큰 RX의 중량과 큰 차이가 없다.

RZ에도 RX와 마찬가지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후륜과 전륜의 브레이크 유압이 순차적으로 가동되는 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달리는 차에 감속 페달을 밟으면 관성에 의해 차의 앞쪽이 먼저 고개를 숙이는 노즈 다이브(nose dive)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후륜의 브레이크 유압이 미세하게 먼저 작동돼 차체의 뒤쪽을 눌러주는 구실을 한다. 

물론, RZ의 브레이크가 내연기관의 그것과 똑 같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브레이크 패드에 압력이 가해지기 전, 우선적으로 작동하는 회생제동 탓이다. 급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이질감을 남기고 있었다.

중량감 있는 대용량 배터리가 바닥에 깔리는 전용 전기차는 서스펜션의 구실이 중요해진다. RZ 450e의 전륜에는 새로 개발한 맥퍼슨 스트럿과 주파수 반응형 댐퍼가 렉서스 최초로 투입됐고, 후륜에는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승차감과 핸들링 안정성을 책임진다.

패키징에서도 ‘렉서스 다움’은 중요한 포인트였다. e-TNGA 플랫폼에서도 배터리와 리어 모터를 낮게 배치해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을 향상시키면서 여유로운 실내와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낮은 보닛 설계로 시야 확보도 수월하게 했다.

프런트와 리어 축에는 새로 개발된 이액슬(e-Axle) 기반의 다이렉트4(DIRECT4) 사륜구동 시스템이 들어가 있는데, 전후방 토크 배분이 경이롭다. 100:0에서 0:100까지 정밀한 분배가 가능하다. 150kW의 전륜 모터, 80kW의 후륜 모터가 시시각각 정보를 주고받으며 토크 밸런스를 유지한다.

이 모든 것들이 RZ로 하여금 ‘더 조용한 RX’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렉서스 다움’은 태생이 다른 전기차에서도 매우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잃은 것도 있다. ‘전기차 다움’이다.

렉서스가 내연기관차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한 건 틀림없지만 전기차 시대를 이끈 선구자는 아니다. 2012년 최초의 테슬라, ‘모델 S’가 고고성을 울렸으니 RZ 450e는 그 보다 10년이 늦다. 그 사이 수많은 진보적인 운전자들이 테슬라에 열광했고, 나름대로 ‘전기차 다움’이라는 세계관을 형성해 놓았다. 전동화에 발빠르게 뛰어든 현대기아의 전기차들도 대체적으로는 테슬라가 만들어 놓은 전기차 세계관을 따르고 있다.

이에 반해 렉서스 RZ는 ‘전기차 다움’ 대신 ‘렉서스 다움’을 택했다. 렉서스 RX를 타던 사람이 같은 감성으로 RZ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테슬라 전기차의 ‘마라맛’에 중독된 테슬라 세대들에게도 ‘렉서스 다움’이 어필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철저히 선택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가치는 아니다.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Active Sound Control)은 좀더 짜릿해도 괜찮을 뻔했다. BEV 전용 71.4kWh의 대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라면 ‘최대 주행거리 377km’를 더 뛰어넘게 세팅해도 괜찮을 뻔했다. 시스템 총 출력 312마력의 스펙이라면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넣어 야생마 같은 거친 숨소리를 내게 해도 괜찮을 뻔했다. 이 또한 선택의 문제이다. 

‘디 올 뉴 일렉트릭 RZ’는 수프림과 럭셔리, 2개의 그레이드로 출시됐는데, 권장소비자가격은 RZ 450e 수프림 8,480만원, RZ 450e 럭셔리 9,250만원이다. (부가세 포함, 개별소비세 3.5% 기준)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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