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비웃는 리딩방, 카카오톡 막자 텔레그램行

문수빈 기자 2023. 7.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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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투자자문업자 규제 강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법안소위 통과
업체들은 장애물 있는 카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채널 변경
해외 소재 텔레그램서 정보 받기 쉽지 않아…투자자 제보에 의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연합뉴스

“연말까지 불법 리딩방 등에 대한 특별 단속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

지난달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같이 말하며 주식 리딩방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업자들은 사각지대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해외에 근거지를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리딩방을 개설할 경우 우리 감독당국이 관련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암행 점검을 하려고 해도 예산이 부족해 제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불법 리딩방 단속의 현실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 유사투자자문업체는 이달 들어 고객과의 소통 채널을 기존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변경했다. 이 업체는 기존 회원 등에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운영 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리딩방을 부득이하게 텔레그램에서 운영하게 됐다”는 내용과 함께 텔레그램방의 링크를 문자로 보냈다.

A유사투자자문업자가 회원 등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문수빈 기자

채널 변경은 지난달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대한 규율을 강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데에 따른 것이다. 해당 개정안은 수신자가 발신자와 직접 채팅을 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 등에서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영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일대일(1:1) 투자 자문을 막고 불특정 다수에게 개별성 없는 투자 조언만 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A사와 같은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은 ‘텔레그램 채널’로 영업 방식을 바꿨다. 텔레그램 채널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달리 수신만 할 수 있다. 이들은 채널을 통해 회원들에게 특정 종목 매수 가격과 매도 가격을 지정하고 있다. 리딩방 운영자가 특정 종목을 선매수한 뒤 회원들에게 매수를 추천해 주가를 끌어올린 후 운영자가 먼저 선매도해 차익을 챙기는 건 전형적인 불법 리딩방의 구조다.

회원이 A사 리딩방 채널에 접속하더라도 리딩방 운영자가 보내는 메시지만 받을 수 있을 뿐 답장은 할 수 없다. 법상 유사투자자문업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 조언을 할 수 있어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이들의 꼼수는 공지사항에 숨어있다.

A사는 텔레그램 채널 공지사항에 1:1로 연락할 수 있는 텔레그램 아이디를 기재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그램 채널’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투자자에게 1:1 영업을 하는 것이다. 본사가 해외에 있다는 것 말고는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텔레그램은 불법 유사투자자문업자에게 최적의 장소다.

A유사투자자문업체의 텔레그램 채널/문수빈 기자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텔레그램에 리딩방 관련해서 협조 요청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텔레그램 측에 채널 관련 정보를 달라고 할 때) 채널을 특정해서 정보를 요청해야 하는데 그 채널조차 인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텔레그램은 마약과 관련해서도 국내 수사기관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 불법 리딩방과 관련한 금융당국의 정보 요청 역시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에도 금융당국은 불법 리딩방을 뿌리 뽑기 위해 주요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자율 규제 기능을 강화해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여기서 텔레그램은 예외였다. 당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에 플랫폼 내 불법행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청했다. 또 불공정거래 행위자의 오픈 채팅 사용을 제한하거나 주식 리딩방 내 유의 사항 안내·신고 기능 강화 등도 당부했다. 이같은 요청은 모두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대상으로 했다.

금감원은 해외 감독당국과 불공정거래 적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해외 감독당국을 통해 그곳에 근거지를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텔레그램은 소재지가 불분명한 데다가, 소재지가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리딩방에 대한 암행 점검도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금감원의 암행점검 관련 예산은 1800만원인데, 유료 리딩방 가입비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 수준이다. 2000만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는 불법 리딩방을 들여다보기 부족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것은 제보다. 사실상 제보가 아니면 리딩방을 알아내기 힘들어서다. 금감원은 “주식 등을 매개로 한 리딩방 관련 제보와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집중신고기간을 연말까지 운영한다”며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제보는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제보에 따른 포상금이 최고 한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이유에서다. 현재 불공정거래 신고에 따른 포상금 최고한도는 20억원이지만, 최근 6개년 실제 제보자에게 지급된 평균 포상금은 2116만원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불법 유사투자자문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포상금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리딩방을 제보해 각각 5850만원, 5000만원 포상금을 지급받은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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