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윤석열의 '변곡점'이 공허한 이유
저성장·저출산등 구조 바뀌는데
'그 밥에 그 나물' 정책으론 해결 난망
정책입안자 파격적 대안 고민하고
구태 정치인·관료·노조 각성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 우리 경제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인 만큼 심기일전하자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이 위기를 잘 넘기면 수출은 플러스로, 물가는 저물가로, 민생은 안정으로, 성장은 우상향할 수 있다는 희망에 방점을 찍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냉정히 보자.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정책 중 하나는 역전세를 막기 위해 집주인에게 전세금반환대출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정책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최근 서울부터 아파트 가격이 꿈틀대자 대세 상승장이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하나둘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전세금도 돌려주지 못할 집주인이 많아 보증금 차액만큼 대출을 해준다는 자체가 부동산이 위험하다는 신호다. 전세 시장의 붕괴를 방치하면 부동산 경착륙이 불가피하기에 빚을 끌어와 주택 시장을 떠받치는 것이다.
이것은 자영업자가 대출을 못 갚을 만큼 어려워지자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 연거푸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준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이마저도 9월이면 끝난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힘든 게 현재 한국 사회다. 돌이켜보면 살기 팍팍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그러니 이런 어려움이 별스러운 게 아니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더 불안한 것은 대통령의 언급대로 우리 사회가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신화가 더는 통하지 않게 된 경제 여건, 천연자원 빈국인 한국이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웠던 풍부한 인적자원을 보장하지 못하는 저출산 고질병, 일류·이류의 구분이 희미해지자 마치 의대(醫大)가 마지막 남은 일류의 섬인양 집착하는 퇴행적 교육, 부모를 봉양했지만 자식에게 미래를 의탁하지 않는 첫 세대인 50~60대와 희망 없는 젊은 층 사이의 날카로운 세대 갈등 등등. 어느 하나 위태롭지 않은 게 없다. 한국 사회는 내부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칭칭 감고 있는 사회 같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거품이 빠지면서 이른바 수축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팽창 사회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런 괴리감 때문에 뭔지 모를 불안증이 더 심해지는지 모르겠다. 기업이든 국가든 성장할 때는 문제가 없다. 달리는 말에 올라타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 기업에서는 노조가 노조 프레임에 갇혀도, 정치에서는 정치인이 싸움박질로 날을 지새워도 크게 탈이 없다.
하지만 그 상쾌한 질주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팽창 사회에서 보장됐던 개인의 성장은 이제 구조를 돌보지 않으면 어렵다. 사회가 바뀌는데도 과거를 보면서 과거에 통했던 방식으로 움직이면 공멸뿐이다. 정책 입안자는 더 파격적이어야 하고 사회 구성원들은 타인에게 더 공감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프레임 너머를 보는 노력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멍이 뚫리고 녹슨 구조를 건강하게 바꿀 수 없다. 가령 주거 문제만 해도 ‘파격적 가격’의 주택 공급을 오직 자기가 보유한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는 악재로만 인식했던 게 팽창 사회의 한국이었다면 이제 다른 각도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복지도 ‘사교육 척결’이라는 뻔한 결론이 아니라 공교육의 역할을 확장해 학교가 일정 부분 가성비가 뛰어난 학원의 역할을 맡는 식으로 갈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변곡점이라는 대통령이 제시한 키워드에 한참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그 밥에 그 나물로는 우리 사회의 뼈대를 새롭게 구축할 수 없기에 그렇다. 상투적 권력투쟁에 매몰된 부패한 정치인, 기득권 편에 서서 복지부동하는 기회주의적 관료, 변화와 혁신에 철벽 치기 바쁜 귀족 노조 등 ‘변곡점’의 적(敵)부터 솎아내야 한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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