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아깝지 않은 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잡으면서 요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 올렸다.
유독 한 친구가 '싫다'고 했다.
그 식당이 위치한 건물의 주차비가 너무 비싸다는 게 이유였다.
가끔 식사 대접을 받을 때 와인 애호가들은 "이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샤토 ○○○의 몇년산 제품입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극찬을 했답니다"라고 설명을 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잡으면서 요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 올렸다. 유독 한 친구가 ‘싫다’고 했다. 그 식당이 위치한 건물의 주차비가 너무 비싸다는 게 이유였다. 모처럼 만나서 맛있게 식사도 하고 느긋하게 대화도 나눠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갈 주차비에 너무 신경이 쓰여 밥맛도 없을 것 같단다. 그 친구는 세상에서 주차비가 제일 아깝단다.
운전면허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주차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면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술값이 제일 아깝다. 후배들에게 호텔 뷔페를 사줄 때는 흔쾌히 계산하는데 설렁탕을 먹으면서도 소주를 주문하면 신경이 쓰인다.
가끔 식사 대접을 받을 때 와인 애호가들은 “이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샤토 ○○○의 몇년산 제품입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극찬을 했답니다”라고 설명을 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얼굴은 미소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구시렁거린다. ‘먹으면 결국 소변으로 나올 텐데 왜 저런 술에 수십만원을 쓰나. 그 돈으로 스카프라도 사주면 감사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와인을 선물한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의 물방울’이라고 불리는 와인을 사주고 그에 대해 알려주는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게다. 개인들에게 아까운 돈과 아깝지 않은 돈의 기준은 각자의 경제력이 아니라 그 물건이나 행위에서 얼마나 기쁨과 만족을 느끼냐에 달린 것 같다.
다른 이들은 이해 못하는 나의 아깝지 않은 소비는 ‘택시 타기’와 ‘책 사 모으기’다. 난 몇걸음이면 도착하는 곳을 갈 때도 택시를 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플러스펜이나 볼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내 딸은 내가 택시비만 아꼈어도 오피스텔 한채는 샀을 거라고 한심해한다. 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우편으로 반납하거나 전자책을 구입하면 훨씬 경제적인데 중고서점에 되팔 수도 없게 밑줄을 긋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한정판 명품 핸드백을 구매하거나 고가의 모피코트에 몸을 맡길 때의 행복함보다 책에서 너무 아름다운 문장 혹은 적확하고 완벽한 비유나 단어를 발견했을 때의 황홀함이 훨씬 강하다.
가끔 책꽂이에서 오래전에 읽은 책을 꺼내 읽다가 내가 밑줄 친 문장을 보면 그 책을 읽었을 무렵의 내 상황이나 감정·정서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작가 박완서 선생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여행과 나무 심기, 책 구매에 쓴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올해 84세이신데도 건강하고 열정 넘치는 연기자 전원주 선생은 절약의 아이콘이다. 휴지 한장도 아껴 쓰고 연예인인데도 시장에서 옷을 사 입는다. 그런데 아끼지 않는 지출이 있단다. 홍삼 등 건강식품을 살 때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마치 비밀인 듯, 내게 귓속말로 전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그들의 아깝지 않은 돈의 목록이 아닐까. 그래서 난 오늘도 새로운 책 몇권을 사기 위해 택시를 탄다.
유인경 방송인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