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매스의 두 얼굴]① [르포] 썰렁한 목재 야적장, 우드칩 싣고 줄 선 발전소…바이오매스 5년, 땔감 신세 나무들

김형준 2023. 7. 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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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재활용할 나무들, 연기가 되다
지난달 2일 전북 군산시 한 발전사 앞에 목재펠릿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정차돼 있다. 군산=김형준 기자

#. 지난달 2일 전북 군산시 군산항 인근 A화력발전소 앞. 목재펠릿(분쇄된 나무를 압축·가공해 만든 바이오 연료)를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들이 편도 2차로 도로의 한 개 차로를 차지한 채 발전소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림잡아 10대 남짓의 대기 차량에 실린 목재펠릿의 최종 목적지는 화력발전소 안 보일러. 이 지역 발전업계 종사자는 "친환경 발전에 쓰일 버려진 목재들"이라고 했다. 곧 불 속으로 들어가 전기를 만들고 사라질 '땔감'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발전소에 차례로 들어간 화물차들은 몇십 분 뒤 목재펠릿을 모두 쏟아낸 뒤 발전소를 빠져나왔다.

#. A발전소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전북 익산시 한솔홈데코 익산공장. 중밀도섬유판(MDF) 등 나무로 각종 가공품을 만드는 이곳 현장 관계자들은 요즘 휑한 목재 야적장을 보면 속이 탄다고 했다. '폐기물'로 분류돼 화력발전소에서 태우는 목재들이 정작 이곳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5년 사이 종류와 상관없이 대부분 나무들이 우드칩으로 탈바꿈해 화력발전소에 비싼 값에 팔리다 보니 제품 생산에 필요한 목재 확보가 어렵다"며 "바이오매스 발전으로 태워지는 나무 중 상당수는 충분히 상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목재"라며 가슴을 쳤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제한된 양의 목재펠릿을 두고 목재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발전사와 나무로 각종 공산품을 만드는 목재사들의 처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탄소를 배출하는 대형 석탄 발전소가 유연탄과 목재펠릿을 섞어 태우는 바이오매스 발전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실행하려다 보니 많은 양의 목재펠릿을 적극 사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합판이나 종이 등을 만들던 목재업계는 나무 구하기가 훨씬 힘들어졌고 예전보다 훨씬 비싼 값에 사거나 이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잦아졌다.

목재사들은 "국내나 해외에서 들여온 나무들이 발전소 땔감 신세가 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수많은 목재들이 발전사로 넘어가면서 가구, 합판, 종이 등 나무를 가지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던 재활용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적용 범위를 너무 넓게 설정하다 보니 기존 산업군을 무너뜨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동시에 탄소 중립 에너지 효율화로 나아가야 할 신재생에너지 정책 또한 뒷걸음질하게 만들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발전사들 '바이오매스 러시'에 목재사 아우성

지난달 2일 전북 익산시 한솔홈데코 목재 야적장의 상당 부분이 비어 있다 .익산=김형준 기자

식물 등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은 2012년 RPS가 도입되면서 빠르게 확산했다. 국내에서는 500메가와트시(MWh) 이상 발전사업자를 대상으로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하도록 하면서 나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졌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를 포함한 8개 공기업과 대기업 계열사 등 17개 민간 발전사까지 총 25개 회사가 RPS 의무 기업이다.

특히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보조금 성격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제도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REC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한 사실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전력공급량(MWh)에 가중치를 곱해 산정·발급하는데 바이오매스는 2018년 이전까지 일부 태양광 발전보다 높은 가중치를 매길 정도로 정부에서 힘을 실었다.

그러나 정부가 목재펠릿과 유연탄을 섞어 발전기를 돌려도 된다고 한 뒤 발전사들의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 확장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5년 동안 바이오매스 발전을 두고 산업계는 물론 환경단체와 학계, 국제 사회의 재평가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목질계 바이오매스 발전의 경우 태양광·풍력 등 다른 재생 에너지원과 달리 나무라는 한정된 자원을 갖고 전기를 만든다는 특성 때문이다.

목재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면 누구든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바이오매스는 나무 없이는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다"며 "목재 수급 현황을 꼼꼼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REC 가중치를 주다 보니 바이오매스가 목재업계를 잠식하는 황소개구리가 된 셈"이라고 했다.


정부 "바이오매스는 재생에너지 발전 유인책이었다"

바이오매스 발전사-목재사의 원목 활용 단계.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런 상황을 정부가 모르는 건 아니다. 2018년 발급된 REC 공급인증서 중 바이오매스 발전 비중이 27.4%에 달하면서 목재 수급난 부작용이 계속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2018년 바이오매스 발전(목재펠릿·전소)의 REC 가중치를 1.5에서 0.5로 낮췄다. 그러나 산불 피해목, 산림 부산물 등 MDF 합판 제작에 쓰이는 '미이용 바이오매스' 종류 목재에는 여전히 전소(專燒·한 개 원료 연소) 설비 2.0, 혼소(混燒·두 종류 이상 원료 연소) 설비 1.5의 높은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나무 종류에 따라 두 배가량의 값을 더 쳐주는 정부의 REC 정책 때문에 가공품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 나무들조차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로 분류돼 여전히 발전용으로 쏠리는 점이 문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상북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17일까지 울진 산불 피해목 긴급벌채 판매량 6,156톤 중 89.4%에 달하는 5,504톤이 발전소에 팔렸다. 나무를 벌채하는 한국원목생산업협회 정월봉 회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물량을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멀쩡한 나무도 톱으로 잘라만 주면 값을 쳐주겠다는 에너지사들이 있다"며 "합판·보드업체들이 써야 할 목재들도 돈을 더 쳐주겠다고 하니 발전사로 팔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바이오매스에 가중치를 높게 준 이유를 두고 "경제성을 분석했을 때 (태양광보다) 상대적으로 REC 가중치를 더 줘야 바이오매스 발전 설비가 들어올 수 있다고 봤다"며 "(바이오매스 발전 허가가 활발했던) 당시엔 태양광이나 풍력 등이 워낙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바이오매스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커져가는 목재 수급난… "세심한 정책 수립해야"

강원 삼척시에 있는 펄프용 우드칩 생산업체의 야적장. 지난해 6월(왼쪽사진)에는 야적장 가득히 나무들이 쌓여 있지만 약 1년 만인 올 5월(오른쪽) 목재 수급난으로 야적장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 삼척=나주예 기자

문제는 갈수록 목재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발전사와 목재사 사이에 '나무 쟁탈전'이 더 치열해질 거라는 점이다. 김영진 의원실이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국내 목재 자급률은 2012년 16.2%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15%까지 떨어졌다. 2017년 벌채 구역의 10% 이상 면적을 벌채하지 않고 남겨둬야 하는 '친환경 벌채제도'가 시행되면서 목재 공급량이 꾸준히 감소한 탓이다. 특히 벌채 허가량은 2012년 1,070만1,000㎥에서 지난해엔 474만2,000㎥로 절반 이상 줄었다.

산림청은 "합판·보드 업계의 실적 부진은 원료 부족보다는 건설 경기 불황, 고유가 등 전반적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원인으로 판단된다"며 "기존 목재산업 원료와 경합을 피하기 위해 원목이 미이용 산림바이오 매스로 쓰이지 않도록 현장 점검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오매스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와 목재 산업계에서 쓰는 목재는 종류가 다르다는 게 산림청 주장이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이와 다르다. 한국합판보드협회의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지정 항목의 보드산업 사용실적'에 따르면 합판·보드 업계가 2010년부터 올 7월까지 사용한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재선충피해목·산불피해목·가로수 전정목 등 5종)는 약 132만4,200톤에 달한다. 나무를 두고 바이오매스 발전소와 목재 산업계가 벌이는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이런 목재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는 바이오혼소에 쓰이는 수입산 목재펠릿을 줄이고 국내 미이용 바이오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서 국내 민간회사와 2025년 수입산 목재펠릿의 REC 일몰에 합의했는데 목재사들은 산업계 전반을 살핀 세심한 정책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

국내 바이오매스 산업 활성화를 위한다는 취지지만 가뜩이나 국내산 목재 수급난에 시달리는 목재 업계는 어려움이 커진다고 하소연한다. 국내 합판·보드 생산업체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목재 공급량이 따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수입산 목재 펠릿 가중치를 없애면 국내 나무 부족현상이 심각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멀쩡한 원목이 죄다 '미이용'이라고 취급되며 발전소로 쏠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REC 가중치에 있어 미이용 바이오매스는 여전히 전소 설비 2.0, 혼소 설비 1.5를 적용받아서 육상풍력(1.2)이나 태양광(1.6)발전보다도 가중치가 높다. 바이오매스 발전에 대한 가중치는 조금씩 줄이고 있지만 2018년 이후 건설된 발전소에만 적용이 돼 대부분의 발전소는 1.5 가중치를 그대로 적용받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여전히 1.5의 가중치를 적용받고 있으며 전체 REC 1,022만 개 중 27.8%(285만 개)를 바이오매스로 채우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바이오매스 REC 가중치를 줄이는 식으로 바이오매스 발전 설비가 신규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정책도 바이오매스보다 태양광, 풍력 등 원료를 두고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 갈등이 없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산·익산=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삼척=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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