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생존자 44명, 사람이 만들어 낸 기적…1993년 목포 여객기 추락사고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목포 여객기 추락사고를 조명했다.
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응답하라 733 - 1993년 목포 여객기 추락사고'라는 부제로 1993년 7월의 그날을 추적했다.
1993년 7월의 어느 날, 신나라 신준영 남매는 여름방학을 맞아 목포에 있는 할머니댁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회사 일로 함께 가지 못해 가족을 위해 목포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남매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아시아나 733편에 올랐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직접 공항까지 배웅했고, 티켓팅 카운터에 가족들의 좌석을 앞 좌석으로 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탁과 달리 가족들의 좌석은 거의 맨 끝이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잔뜩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의 출발을 기다렸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나라 아버지에게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그의 형수는 뉴스를 확인하라고 했고, 뉴스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탄 비행기가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에 빠졌다.
해당 비행기는 목포 공항 착륙 직전, 관제탑과의 교신이 끊어졌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 110명을 태운 비행기가 사라지자 대한민국도 발칵 뒤집혔다.
전남 해남군 마천마을, 그날은 천둥소리가 유난히 컸다. 밭일을 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의문의 남성이 다가왔다. 피를 철철 흘리며 절뚝이며 다가온 그는 비행기가 하늘에서 떨어져서 내려왔다는 말을 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산에 비행기가 추락했다며 빨리 구조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잠시 후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마천마을에는 곧 이 소식이 전해졌다. 아시아나 733편이 마을 근처 운거산에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을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구조를 위해 산으로 올랐다.
가파른 경사에 비까지 내리고, 언제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마을 주민들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슬리퍼만 신고 산으로 올랐다. 그리고 이들은 필사의 노력으로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에도 주민들은 살려달라는 소리에 다가가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장대와 옷가지로 들것을 만들어 부상자들을 싣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험한 산세에 주민들은 릴레이로 부상자들을 후송했고, 가벼운 아이들은 업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뒤늦게 투입된 군병력과 해군의 헬기까지 구조 작업에 나서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기 전 무려 44명의 생명을 구했다.
사고 비행기에 가족들을 태워 보낸 가족들은 그날 밤 뉴스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 집중했다. 마천마을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생존자가 나왔고 목포로 이송됐다는 이야기에 가족들은 서둘러 목포로 향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제발 살아있기만을 빌며 생존자 명단에서 가족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가족들에게 목포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했던 나라의 아버지는 다행히도 아들과 딸, 아내가 모두 생존했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안타까운 유가족들의 통곡만이 감돌았다. 유류품 중 가장 많았던 것은 피서 용품, 휴가를 떠나는 가족 단위 승객이 많아한 가족은 가족 9명 중 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생존했거나 사망했거나 가족들을 찾은 사람들 속에서 애타게 딸을 찾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내와 아들, 딸이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아의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의 시신은 확인했지만 딸은 생존자 명단에서도 사망자 명단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딸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딸의 영정까지 준비한 그는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병원으로 모두 뒤졌다. 그리고 한 병원에서 딸과 많이 닮은 아이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이의 병상에는 딸의 이름이 아닌 임보경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고, 곁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간호 중이라 의아해했다.
승아 아버지는 이상한 이끌림에 보경이의 아버지에게 붕대를 한번 풀어볼 수 있냐고 부탁했고, 보경이 아버지는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승아 아버지는 아이의 얼굴은 보고 자신의 딸이라 확신했다.
서로가 자신의 딸이라 주장하는 가운데 결국 이들은 검사를 하기로 했고, 검사를 앞둔 그때 보경이의 아버지가 "제 딸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을 건넸다.
아내를 잃은 상황에 아이들만은 무사하길 바랐던 보경이의 아버지는 경황이 없던 상황에서 사망한 딸을 알아보지 못했고, 승아가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했던 것. 결국 딸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딸에게 찾아가 "아빠가 몰라봐서 미안해"라고 사과하며 오열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가족을 잃게 된 추락 사고. 이 사고는 기상 악화로 인해 구름 속에 갇혔던 상황에서 운거산을 다 넘어간 것으로 착각하고 착륙을 시도해 산과 충돌해 추락한 것이었다.
뒤늦게 산이 앞에 있던 것을 조종간을 잡았지만 이미 늦었고,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던 것. 다행히도 추락 당시 나무가 완충 작용을 하면서 생존자가 많이 나왔는데 앞부분이 먼저 충돌해서 앞 좌석 승객들이 많이 사망하고 뒷좌석 승객들의 생존율이 높았던 것이다.
55일간 계속된 조사가 끝나고 사고의 원인이 발표됐다.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사고가 조사로 나온 결과였다. 8000시간 비행을 한 베테랑 기장은 왜 그런 실수를 했던 걸까.
목포 공항의 활주로는 좁고 짧았다. 그리고 착륙을 돕는 ILS장치가 없어 착륙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착륙 당시 날씨가 개고 있었고 회항을 할 경우 항공사 입장에서는 뒷수습이 부담스러워 이에 기장은 착륙을 수차례 시도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그리고 정시운항률 경쟁으로 인한 심적 부담, 늘어나는 항공 수요 속에서 부족한 인력 등이 힘든 여건 속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종사들의 등을 떠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사고 이후 조종사 간 확인 및 조언 절차가 수립됐고 항공 안전 시스템 개선, 운영 조직 재구성이 진행됐다. 그리고 목포 공항은 더 이상 민간용으로 쓰지 않기로 결정됐다. 아픔과 희생으로 안전의 돌탑이 쌓이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사고가 난 지 어느덧 30년, 여전히 생존자들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존자들은 자신들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며 쓸모 있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 1100만 분의 1. 그리고 그 사고에서 살아날 확률은 그것보다 더 미약한 확률일 것이다. 이에 44명의 생존자들에게는 이 것은 분명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든 자리에는 마천마을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며 기적 또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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