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월터 스콧이 소설을 익명 출간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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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해 공쿠르상 중복 수상이라는 '스캔들'을 낳았다.
수도 에든버러의 이름난 변호사였고 판사였던 그는 자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소설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 익명으로 출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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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해 공쿠르상 중복 수상이라는 ‘스캔들’을 낳았다. 알려진 바 그의 의도는, 물론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자신을 퇴물 취급하던 평단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작가가 가명·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예는 드물지 않고, 이유도 다양하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새로운 작품을 쓰고자 공개적으로 제2, 제3의 필명을 쓴 이도 있고, 모종의 탄압(필화)을 피하기 위해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 철저히 익명을 고수하는 이도 있다.
19세기 스코틀랜드 낭만주의 시인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도 1814년 7월 7일, 그의 첫 소설이자 현대 역사소설의 시초라 평가받는 ‘웨이벌리(Waverley)’를 익명으로 출간했다. 18세기 중엽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에 배치된 영국 청년 장교 에드워드 웨이벌리가 조국 잉글랜드를 배신하고 재커바이트 반군에 가담해 벌인 전투와 사랑을 그린 소설. 책은 출간 이틀 만에 초판 1,000권이 매진됐고 넉 달 사이 4쇄를 찍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출간 직후부터 스콧의 작품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는 한사코 부정했고 심지어 신작 시 평을 주고받던 지인들에게조차 진실을 감췄다. 생애 후반부 약 20년간 웨이벌리 연작으로 알려진 ‘아이반호(Ivanhoe)’ 등 소설 23편을 잇달아 출간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초고를 다른 이에게 옮겨 적게 해 편집자가 필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첫 소설을 내던 무렵에도 이미 그는 대표작 ‘호수의 여인(1810)’ 등을 발표한 저명 시인이었다.
그는 숨지기 5년 전인 1827년에야 ‘커밍아웃’했다. 수도 에든버러의 이름난 변호사였고 판사였던 그는 자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소설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 익명으로 출간했다고 밝혔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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