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 이건 너무하잖아요… 칼 빼들기 시작한 유럽 각국

김지원 기자 2023. 7. 7.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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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난입·유적 훼손·댐 점거…
윔블던 테니스 중단 - 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3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 소속 활동가가 경기장으로 들어와 색종이를 뿌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여름철 성수기를 맞은 유럽의 유명 미술관과 관광지, 스포츠 행사장은 최근 보안 수위를 높이고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테러나 압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온갖 환경 단체들이 기습적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는 일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메시지를 설파한다며 관광 명소에서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언론의 조명을 받아온 ‘에코 테러리즘’에 유럽 각국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강력 대응에 나섰다. 고상한 목적을 명분으로 내세워 타인에게 불쾌감과 피해를 주는 행태를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5일(현지 시각)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열린 영국 런던에선 경기가 도중에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영국 환경 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석유 사용을 멈춰라)’ 소속 활동가 두 명이 경기가 진행 중이던 18번 코트에 난입해 주황색 색종이와 작은 퍼즐 조각을 쏟아부으며 혼란이 발생했다. 겨우 경기장을 정리하고 다음 경기를 열었지만, 또다시 같은 단체 소속 활동가 한 명이 난입해 중단됐다. 경기 직후 불가리아 출신 테니스 선수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는 “(상대를 이겼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2023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경기 도중 난입한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 소속 활동가가 보안 요원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퇴출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석유 산업을 반대하는 이 단체는 스포츠 경기장에 난입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벌여왔다. 지난 4월엔 ‘세계 스누커(당구 경기의 일종) 선수권 대회’에 난입, 당구대에 올라가 주황색 가루를 뿌려 경기를 중단시켰다. 5월과 6월에도 럭비와 크리켓 대회에서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다. 스포츠 경기만 표적으로 삼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0월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은 것도 이들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M25′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점거해 출근 시간 초유의 교통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5월 21일 로마의 폰타나 디 트레비 분수에서 라스트 제너레이션(Ultima Generazione)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식물성 탄소로 만든 검은 액체를 물에 부은 후 "우리는 화석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환경보호를 명분 삼아 미술품과 유적지를 훼손하고 각종 시설을 점거·파괴하는 이런 에코 테러리즘은 지난해부터 유럽 주요 도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환경 단체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면 평범한 방식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지난 5월 이탈리아에서는 강성 환경 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가 로마의 유명 관광지인 트레비 분수에 식물성 먹물을 부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 라오콘 군상 하단에 접착제를 바른 손을 붙이고 시위를 벌였고, 베네치아 중심부를 흐르는 운하에 플루오레세인이라는 액체를 풀어 녹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환경 단체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등 미술품에 케이크를 던지고, 댐·터널 등 인프라 시설을 점거하는 일이 거의 매달 일어나고 있다.

6월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산업의 날'에 항의하기 위해 접착제로 손을 도로바닥에 붙인 '레츠테 제너레이션'(마지막 세대) 소속 기후변화활동가의 손을 경찰이 떼고 있다./로이터 뉴스1

이들의 시위가 점점 빈번해지고 격해지면서 그동안 ‘집회·시위의 자유’를 존중해 이들을 용인해온 유럽 정부들도 강경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기조를 바꾸고 있다. 지난 2일 영국에선 경찰이 특정한 장소를 점거하는 시위대를 강제로 이동·해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공공질서법(New Public Order Act)’이 시행됐다. 이 법엔 시위 등으로 교통 통행을 방해한 혐의가 인정된 사람은 최대 6개월의 징역에 처하고, 시위대가 다른 사람이나 물건·건물에 불을 붙이는 행위도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엘라 브래버먼 영국 내무장관은 이 법을 제정하며 “대중은 이기적인 시위대에 의해 삶을 충분히 방해받아왔다”고 밝혔다. 지난달 프랑스도 과격 시위를 벌여온 환경 단체 ‘지구의 봉기’를 비(非)합법 단체로 규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서 환경 단체를 제재 대상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단체는 2021년부터 각종 기반 시설을 점거해 시위를 벌여왔고, 지난 3월 프랑스 생트솔린에선 대형 저수지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수백 명이 다쳤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문제는 표현의 자유나 시위의 자유가 아니라, 재산과 사람에 대한 반복적 폭력”이라며 “법치국가에서 폭력 사용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말뫼 항구 차단 - 지난달 19일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운데)가 스웨덴 말뫼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다 경찰에게 연행되는 장면이다. /AFP 연합뉴스

한편 기후변화 관련 시위를 주도해온 스웨덴 출신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5일 스웨덴 검찰에 기소됐다.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툰베리는 지난달 스웨덴 남부 말뫼의 항구 입구 도로를 점거, 유조선 트럭 등을 막아서는 등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고 교통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툰베리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스웨덴 검찰은 “툰베리는 이달 말 말뫼 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며, 통상 경찰 명령에 불복종한 혐의는 최대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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