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폭우에도 꽃은 피네

황시운 소설가 2023. 7.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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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아파트에 딸린 조그만 화단에 엄마는 매년 온갖 꽃들을 심고 가꾼다. 올해는 수국과 백합이 볼만했고 달리아도 붉게 만발했다. 색색의 장미는 기대보다 풍성히 피어났고, 상추와 고추는 소박한 수확물을 안겨 주었다. 반면, 작약은 늦게 옮겨 심은 탓인지 잎만 무성한 채 꽃을 피우지 못했고 글라디올라스도 꽃대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 그 밖에도 많은 야생화들이 제각각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 올렸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면 꽃밭부터 둘러본다. 낮에도 틈만 나면 꽃밭을 가꾼다. 손바닥만 한 꽃밭에 무슨 할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로선 모를 일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엔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게 걱정되기도 하지만 꽃밭을 가꾸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 환해서 차마 말릴 수가 없다. 말리다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가 왜 꽃밭 가꾸기에 그토록 열심인지, 그게 다 누굴 위한 일인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말릴 수가 있단 말인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더 이상 웃지 않는 나를 위해 평생 허투루 돈을 써본 적 없던 엄마가 꽃을 사다가 내 방에 꽂아 놓기 시작했다. 화분을 가득 들인 베란다 쪽으로 휠체어를 밀고가 꽃들을 보여주며 예쁘지 않으냐고 묻기도 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그러다 1층인 지금 집으로 이사 온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꽃밭을 일궜다. 사실 꽃밭은 울창한 나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탓에 해가 잘 들지 않는다. 게다가 큰 나무들이 양분을 모두 흡수해서 작은 꽃들이 자라기엔 여러모로 척박한 환경이다. 엄마는 흙을 뒤집고 새 흙을 섞어줬으며 거름도 듬뿍 줬다. 그래도 해를 보지 못해 꽃들이 죽기 일쑤였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꽃밭 가득 피어난 꽃들은, 정말이지 다시 웃지 않을 수 없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지금 비 내리는 꽃밭을 내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으로 쏟아질 거라는 폭우가 꽃밭을 망가뜨려 놓겠지만 상관없다. 엄마는 꽃밭 가꾸길 멈추지 않을 것이고 꽃들은 다시 싱그럽게 피어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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