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6·25, 기억의 고지 사수해야
며칠 전 책장에서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꺼내 읽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렇다. 우리는 봤던 영화를 다시 떠올린다. 때론 기억 속에서 재상영되는 영화가 더욱 강렬하다.
전쟁도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전쟁터에서, 그다음 한 번은 기억의 공간에서. 1953년 6·25는 멈췄지만, 70년이 지난 지금도 소리 없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실상과 의미를 뒤바꾸며 기억의 영토를 차지하려는 제2의 6·25가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우리 군의 정수(精髓)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의 필수과목에서 6·25 전쟁사를 뺐다. 육사 회보에서 ‘남침(南侵)’ ‘적화통일 기도’ 같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왜 그랬을까? 실마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6·25 73주년에 맞춰 올린 트위터 메시지에 있다. 그는 ‘1950 미중전쟁’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전쟁에 작용한 국제적인 힘이 바로 대한민국의 숙명 같은 지정학적 조건”이라고 했다. 6·25가 김일성의 적화 통일 야욕이 아닌 강대국 대리전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날 국군과 유엔군 전사자에 대한 추모나 감사 메시지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 일가는 6·25 때 흥남에서 미군 도움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는데도 말이다. 민주당도 6·25 메시지에서 북한 남침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73년이 되었지만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한 신문은 호국 보훈의 달 마지막 주에 국군이 6·25 기간 만행을 저질렀다며 보도 윤리에 저촉될 수준의 적나라한 시신 사진을 아무 가림 편집 없이 보도했다. 전쟁의 원흉인 북한의 학살 행위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북한의 무력 도발로 우리 장병이 전사한 서해수호의 날에 굳이 파주 북한군·무장간첩 묘 참배식에 참석한 국회의원도 몇 해 전에 있었다. 이들은 무엇을 기리고 싶은 걸까. 북한의 6·25 남침도 소련 해체로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물증으로 확인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천안함 자폭, 좌초설과 같이 북침, 남침 유도설 같은 음모론이 활개쳤을지 모른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도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냉전적 사고에 빠진 건 김정은 아닌가.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함께 전쟁의 역사와 한반도 정세를 왜곡·오도하려는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역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뀐다’는 말도 된다. 기억의 고지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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