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m 높이서 시속 100km 낙하… 짜릿합니다”

김배중 기자 2023. 7.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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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하이다이빙 선수 최병화
세계선수권 스태프하다 의지 불붙어
14일 개막 日대회 한국대표로 출전
“실력 밀리지만 내 최고기술로 승부”
그저 다이빙이 좋아서 2016년부터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훈련하고 기량을 쌓던 최병화는 7년 만인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을 대표해 출전한다. 최병화는 14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2023 세계수영선수권 출전을 앞두고 있다. 최병화가 이번 대회 27m 플랫폼에 서게 되면 한국 하이다이빙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출전 기록을 남기게 된다. 사진은 최병화가 2021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진행된 하이다이빙 캠프에 참가해 다이빙대(플랫폼)에서 뛰어내리는 모습. 최병화 제공
2019년 7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기간 대회 스태프가 가장 꺼리던 근무지가 있었다. 조선대 캠퍼스 축구장에 아파트 10층 높이로 세운 하이다이빙 타워 꼭대기였다. 대회 기간에만 쓰려고 임시로 만든 이 타워에 오른 선수들은 지상 27m 지점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뛰어내렸지만 ‘일반인’은 그 위에 서 있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 ‘고지대 근무’를 자처한 스태프가 있었다. 당시 다이빙 마스터스 1인자로 손꼽히던 최병화(32·인천시수영연맹·사진)였다. 최병화는 “하이다이빙에 관심이 많았는데 국내에 전문 시설이 없어서 선수가 뛰는 모습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며 “이 선수들 모습을 보면서 도전 의지가 불타올랐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나 최병화는 14일 개막하는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 하이다이빙 한국 대표 선수로 참가한다. 2013년부터 세계선수권 정식 종목이 된 하이다이빙에 한국 선수가 참가하는 건 최병화가 처음이다. 25일 경연에 참가하는 최병화는 “참가 선수 24명 중 경력이 가장 짧기에 객관적인 실력은 24번째”라며 “4번의 기회 동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보여주고 부상 없이 대회를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최병화는 광주 세계선수권이 끝난 뒤 중국 자오칭에 있는 하이다이빙 캠프를 찾아 전문 교육을 받으면서 하이다이버다운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최병화는 “27m 높이에서 시속 100km 가까운 속도로 떨어지면 마치 우주에서 지구로 진입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병화는 이후 오픈대회, 절벽 뛰기 대회 등에 참가해 경력을 쌓고 기량을 연마했다. 기술을 익히며 입수 과정에서 왼쪽 고막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최병화는 지난해 제주도수영연맹 소속으로 대한수영연맹 등록선수가 되면서 국제수영연맹(FINA) 주관 대회에도 자유롭게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는 올해 5월 열린 하이다이빙 월드컵이었다. 하이다이빙 월드컵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24장이 걸려 있었다. 최병화는 29위로 이 기준을 충족하지는 못했지만 부상 선수 등이 나오면서 결국 후쿠오카 세계선수권 출전 자격까지 얻었다.

최병화는 한국 역대 1호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 최윤칠 선생(1928∼2020)의 손자다. 최 선생은 1954년 마닐라 대회 때 육상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땅’ 위를 주름잡았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는 ‘물’을 알려줬다. 최병화를 유아스포츠단 수영부에 처음 데려간 이가 바로 할아버지였다. 초등학교 때까지 수영(경영)을 했던 최병화는 대학 시절에는 조정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해병대 수색대 전역 후에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에 도전해 국내 대회를 휩쓸기도 했다.

다이빙에 입문한 건 2016년이었다. 최병화는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던 중 ‘자연 속에서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고 떠올렸다. 문제는 국내에 있는 10m 플랫폼 다이빙 시설도 일반인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최병화는 “그 대신 유튜브로 해외 유명 선수들 영상을 찾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2017년 다이빙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가 ‘마스터스계’를 평정하면서 엘리트 지도자들도 그에게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훈련장에 ‘몰래 불러’ 훈련을 돕는 지도자도 있을 정도였다. 국내 한 실업팀 감독은 “최병화가 운동신경도 있고 무엇보다 열정이 넘쳤다. 국내에 하이다이빙 전문시설이나 지도자가 없어서 큰 도움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꿈을 좇았고 결국 이룬 용기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최병화는 “국내 최초의 하이다이빙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은 뒤 주변의 도움이 잇따랐지만 처음 다이빙을 시작할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훈련 비용을 충당하는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세계선수권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훈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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