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급락 큰 손실, 증권사 못 믿겠다” 일임계약 25% 줄어

최형석 기자 2023. 7.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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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 금리 인상으로 일임계약 ‘랩’ 손실 파장

증권사들의 일임계약액이 1년 전과 비교해 4분의 1만큼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값이 급락하자 일임계약 운용에서 손실이 많이 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일임계약이란 투자자가 증권사에 자산 운용을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증권사의 일임계약은 ‘랩’으로도 불린다.

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2년 투자자문·일임업 영업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증권사의 일임계약액은 109조8000억원으로 1년 전인 작년 3월 말(146조1000억원)에 비해 25% 줄었다.

그래픽=송윤혜

한편 증권사 일임계약과 성격이 같은 은행의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8.7%, 자산운용사는 2.4%씩 일임계약액이 늘었다. 계약액이 감소한 증권사와 상황이 달랐던 이유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은 절대 증가액이 1000억원으로 미미했고, 자산운용사는 계열사에 대한 일임계약이 늘었기 때문이었다”며 “이들도 수수료 수입이 크게 감소해 작년 레고랜드 사태 여파를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부 증권사에 대해 고객 손실을 편법으로 보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3일 “잘못된 관행이므로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하경

◇레고랜드 사태로 발생한 고객 손실 보전

증권사의 일임계약 손실은 작년 채권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레고 사태 때문이었다. 레고랜드를 건설하려고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가 빌린 돈에 대해 보증을 섰던 강원도가 도지사가 바뀐 후 채무보증을 이행하지 않자 작년 10월 국내 채권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강원도는 채무를 상환하겠다고 선회했다. 하지만 지자체 정부발 채무 불이행 충격이 이미 자금 시장을 때린 뒤였다.

채권 금리는 치솟았고 채권 값은 급락했다. 게다가 작년에는 미국발(發) 기준금리 인상까지 겹쳐 채권 값 하락세는 더 가팔라졌다. 2021년 연 1%대였던 국고채 금리(5년물)는 작년 10월 4.7% 가까이 급등(채권 값 급락)했다.

그 여파는 증권사 랩·신탁까지 미쳤다. 일부 증권사는 3~6개월 단기간 운용을 목적으로 투자된 랩·신탁 자금을 장기(1~3년 이상) 상품으로 돌렸는데, 장기 채권 가격 하락이 더 커지면서 손실을 냈다. 여기에 레고 사태와 금리 인상까지 겹쳐 투자 손실이 커졌고, 환매(고객 투자금을 중도에 돌려주는 것) 요청이 밀려들자 편법으로 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투자 손실을 새로 유입되는 다른 고객에게 계속 떠넘기는 일종의 다단계 돌려막기식 거래를 했다. 증권사의 자체 자산(고유 자산)을 활용해 고객의 자산을 고가에 사주는 편법도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는 수백억원 규모 평가 손실을 입었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그래픽=김하경

◇“투자 자기 책임 원칙 무너졌다”

금감원은 연기금·법인 등 고액 투자자에게 실적에 따라 수익이 지급돼야 할 상품이 사실상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팔려나간 점을 지적했다. 법인 고객들 역시 투자 손실을 지지 않으려는 잘못된 관행하에 투자한 것으로 봤다.

이 고객들은 영세 법인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연기금·공제회 같은 기관 투자자가 대부분이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들 기관들은 ‘갑’의 위치에서 증권사들에 수익을 사실상 보전받으려는 경향이 강했다”며 “증권사로서도 당장 약간의 손실을 보더라도 ‘큰손’ 고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이득으로 보고 이 같은 관행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이에 따라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장기 채권은 가격이 급등락해 꼼꼼히 관리해야 함에도 증권사가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문제로 꼽혔다.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매·교체하지 않아 투자 목적과 실제 운용 간에 기간이 불일치하는 ‘미스 매칭’ 위험을 키웠다는 것이다.

고객 투자 자산에서 평가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더 높은 장부 가격으로 되사주는 이상 거래를 적발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 내부 통제 체제와 준법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KB·하나 증권에 대해 검사를 진행했고, 그 대상을 한국투자·교보·유진투자 등 다른 증권사까지 확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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