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대통령의 ‘갑툭튀’ 존재감

김진우 기자 2023. 7.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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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고3 아이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카톡 대화를 먼저 걸어오는 일이 드물고, 뭘 물어봐도 “아니요” 같은 단답형이 대부분이던 아이다.

“6모(6월 모의평가) 끝난 시점에 뭐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한 뒤 어떻게 되는 거지?” “앞으로 어떻게 바뀐다는 거지?”

김진우 정치에디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의 물음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5개월을 앞두고 벌어지는 혼란에 대한 불안감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아버지는 달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문제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대답 없는 카톡창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달 16일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졌을 땐 ‘당연한 얘기인데 또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런데 그 후 벌어진 일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6월 모의평가 책임을 지겠다”며 평가원장이 사임했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감사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꺼내들었고, 국세청은 대형 사교육업체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노조, 시민단체에 이어 이제는 사교육업체인가. 툭 하면 ‘카르텔 몰이’다. 그렇게 카르텔 좋아하면서 “법조 카르텔 얘기는 왜 안 하나”(유승민 전 의원).

5세 입학과 연장근로시간제 논란 때도 그랬다. 윤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발언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번에도 대통령의 직접 설명은 없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더니. 역대 최장인 23분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TV 생중계하던 당당함은 어디 갔나.

이번은 아니라고? 윤 대통령이 “검찰 시보 시절부터 입시부정 수사를 맡은 전문가”(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기 때문이란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도 전문가지만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고 할 정도라니. 그렇게 전문가라면서 자신의 발언이 불러올 파장은 예측하지 못했나. 입시제도는 사전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킬러 문항 없앤다고 간단히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더 큰 구조적 문제는 놔두고 눈에 띄는 하나 잡겠다는 건 이번에도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는 건가.

수험생들은 오답노트를 작성하곤 한다. 비슷한 문제를 두 번 틀리지 않기 위해서다. 윤석열 정부가 ‘묻지마 관계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일본에도 유사 사례가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07년 총리직에서 1년 만에 물러난 뒤 집권 당시 잘못을 노트에 적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그가 2012년 재집권해 최장수 총리가 된 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이런 노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의 집권 1년차엔 시행착오로 봐줄 수 있지만, 2년차에도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윤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인 게 벌써 몇 번째인가.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교육당국이 수습에 부산하지만, 불안감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말을 주워담는 과정에서 스텝이 꼬이면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지시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지난해 말부터 윤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사교육 해소 방안을 교육부에 지시했다고 했지만 그 기간에 이 문제가 교육개혁 핵심과제로 공개 언급된 적은 없었다. 윤 대통령이 비문학 국어 문제를 콕 집어 킬러 문항 배제를 지시했지만, 정작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국어는 대체로 무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내 출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총리가 밝힌 킬러 문항을 없애고 준킬러 문항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적정 난이도를 유지할 방안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금 약자인 아이들을 두고 장난치고 있는 게 누구일까.

대통령이야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교육 전문가로서의 존재감을 이참에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의 존재감은 국민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태평성대에는 백성들이 임금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태평성대는 언감생심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현실이 그야말로 ‘웃프다’. 그날 이후 입시 동향 관련 유튜브에 눈이 팔려 있는 아이를 보면서 드는 심정이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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