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엄친아’의 성공을 기원하며
얼마 전, ‘강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유럽 환경단체 활동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유럽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2030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자연복원법이 일부 정당의 반대로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유럽의 생물다양성 전략도 결국은 큰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에 암담했다. 환경정책 부문에서 왠지 잘난 ‘엄마 친구 아들’처럼 느껴지던 유럽마저도 어쩔 수 없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유럽이 ‘2030 EU 생물다양성 전략’을 무난하게 채택한 것부터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이상한 일이다. 몇년 전 한국에서 반짝 유행처럼 휩쓸고 지나간 ‘그린 딜’이 여전히 유럽연합(EU)의 정책적 우산이라니. 게다가 육지와 해양의 30% 보호구역 지정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년 만에 화학농약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가능할까? 녹지의 순손실을 막고, 30억그루의 나무를 심고, 2만5000㎞의 강을 자유롭게 흐르게 할 수 있을까?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목표는 북극곰을 살리자는 수준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목표 하나하나마다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환경을 지키자는 좋은 말에 반대할 시민은 없겠지만, 앞으로 수년 안에 농약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고, 농업용 이탄지의 30%를 생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무를 기꺼이 수용할 농민이 얼마나 있을까. 아파트 대신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면 동의할 지자체가 얼마나 될까.
잘 생각해보면 갈등이 터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걸려 있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드러내고 다투는 것이 정상이다. 갈등은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 진짜 질문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스웨덴의 환경부 장관은 2030 목표를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의회 내 여타 정당들은 농업과 재생에너지 설치 등에 대해서 대안을 내놓고 합의하는 정치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유럽 자연복원법을 지지하는 목소리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유럽 시민들이 서명으로 힘을 보태고, 국제기구와 민간기업도 나서고 있다. 폐기 위기에 놓였던 자연복원법에 대한 최종 표결은 오는 12일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유럽에 비해 한국은 너무 조용히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불안해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전략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다. 한국 사회에 생물다양성을 보전하자는 좋은 말뿐이다. 장기 전략에서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빠져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적절한 합의와 대책을 만드는 과정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은 일부 전문가와 공무원 중심으로 조용히 논의하며 진짜 갈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갈등을 마주하고 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복원을 위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대안을 논의하고 함께 제5차 생물다양성 전략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제도와 재정으로 충분히 뒷받침할 수준의 자연복원법 역시 필요하다. 갈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해지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환경영향평가법을 여야 합의로 무력화시키는 나라에서 대체 누구와 함께 생물다양성을 지킨담! 어렵다. 일단은 ‘엄마 친구 아들’의 성공을 기원한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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