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이해하기 힘든 수도자의 길

경기일보 2023. 7.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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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태 수원가톨릭대 교회법 교수

어느 신부님의 회고록에서 본 이야기다. 딸이 봉쇄수도원에 입회한 다음, 그 아버지는 세 번이나 딸을 수도원에서 빼내 집으로 데려왔다. 믿음이 없었던 비신자 아버지에게 딸이 수녀원에 산다는 것, 그것도 봉쇄수도원에서 지내며 외출도 면회도 없이 산다는 것이 하나의 납치된 생활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녀원에 가 난리를 쳐서 딸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딸이 2주일도 안 돼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어르고 달래며 사정했지만, 그리고 집에서 아예 감금하다시피 했지만 딸이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갔을 때는 정말로 귀한 딸을 잃어버린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딸은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자식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아빠의 도리 아니냐며, 아버지는 딸에게 자식이 그릇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있느냐고, 하필 왜 이 감옥 같은 생활을 하느냐며 둘 사이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또 딸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왜 내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느냐며 울먹였고, 아버지는 이 감옥에서 행복하겠느냐고, 뭔가 네가 홀린 것이 분명하다며 딸을 만류해 본다.

그런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딸의 얼굴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끌고 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날 딸을 수녀원에 두고 돌아온 아버지, 도무지 딸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자신도 믿음을 가져봐야 뭔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성당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직도 믿음이 뭔지, 왜 딸이 그 감옥과 같은 곳에서도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믿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이 직업을 이상하게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낮은 소득 때문일 것이다. 어느 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중 3위가 신부, 2위가 수녀라고 한다. 사실 수도자들은 청빈 서약을 하기에 수녀 개인이 통장을 소유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또 그들의 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소득을 수도회 재산으로 봉헌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는 그들을 저소득 계층으로 판단해 나이가 든 수녀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지원비마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수도회의 공동소유로 돌려야 한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길이다.

그래서 보통 수도자의 삶을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초’에 비유한다. 기꺼이 자신을 태우고 녹여 주위를 밝힌다. 그래서 자신은 없어지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산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세상의 가치보다 위대하다고 믿기에, 나로 인해 누군가가 빛날 수 있는 그 숭고함을 믿기에,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는 희망을 믿기에 이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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