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식당에 술 가져가면 4만5500원, 한국 호텔선 30만원

이태동 기자 2023. 7.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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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마다 콜키지 가격·서비스 천차만별
그래픽=김현국·Midjourney

직장인 김모(31)씨는 최근 부모님 결혼기념일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A호텔 유명 중식당에 콜키지를 물었다가 “와인은 15만원, 그 외 술은 30만원”이란 답을 듣고 당황했다. 볶음밥이나 면류 단품이 4만원 안팎인데, 술을 가져가 마시려면 음식 값의 7배가량 많은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인근 B호텔 뷔페도 비슷했다. 와인 콜키지가 10만원에서 30만원 사이로, 호텔 자체 기준(판매 제품의 30%)으로 책정된다고 했다. 얼마 전 서울 용산 한 고깃집에서 1인분에 1만8000원짜리 갈비를 먹고 콜키지로 5000원을 냈던 김씨는 “도대체 콜키지라는 게 기준이 뭐기에 가격이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로 나는 거냐”며 “식당에서 파는 술이 비싸서 콜키지를 하려는 건데 식당 술보다 비싼 가격을 부르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고급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콜키지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작년 주류 가격이 1년 사이 5.7% 올라 24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외식 주류 물가도 크게 뛰자 술값을 아끼려고 술을 직접 사 들고 식당에 가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식당 업주들이 콜키지와 서비스 내용을 제각각 기준으로 정하다 보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일부 손님들은 “식당에서 파는 술값이 5만원도 안 되는데 콜키지가 10만원이 말이 되느냐. 국내 콜키지가 해외보다 유독 비싼 이유가 뭐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이 같은 소비자 불만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한 글로벌 요리업체 조사에 따르면 미국 뉴욕 레스토랑의 평균 콜키지 가격은 우리 돈으로 4만5500원이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식당이 모여 있는 뉴욕보다 훨씬 비싸게 받는 일부 식당을 보면, 국내에선 콜키지가 고수익을 내는 수단이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천차만별 운영 속 치솟는 콜키지 가격

콜키지(corkage)는 와인 마개인 코르크(cork)와 비용을 뜻하는 차지(charge)를 합친 말로, 원래는 손님이 와인을 식당에 가져가면 식당 측에서 뚜껑을 따고 서빙까지 해주는 일종의 서비스 비용을 의미한다. 손님은 원하는 와인을 음식과 조합해 마실 수 있고, 식당 측은 술 판매 손실을 콜키지로 메울 수 있어 해외에선 ‘합리적’인 음주 문화로 퍼져왔다. 국내 소비자들도 이런 점을 기대하고 콜키지를 자주 찾아왔는데, 모호한 기준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국내에도 콜키지로 2만~3만원을 받는 곳이 적지 않고, 마케팅 차원에서 소주 1병 값인 5000원만 받거나 아예 콜키지를 ‘무료’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수요 증가를 이유로 콜키지를 20만원, 30만원까지 올려 받는 배짱 장사를 한다. 콜키지가 아무런 기준 없이 천차만별로 운영되고, 턱없이 높은 콜키지가 늘면서 “외국의 합리적인 제도가 국내로 들어와 수익 창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기준’ 없어 가격 들쑥날쑥

외식업계에선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수입 주류업계 관계자는 “콜키지가 유행하면서 보편적인 기준 가격대가 형성될 시간이 부족했고, 해외와 달리 와인만이 아니라 소주·맥주·사케·위스키 등 여러 가격대의 다양한 술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가격이 들쑥날쑥해지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 외식업 단체 관계자는 “식당 측이 술을 사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콜키지는 매출이 그대로 순이익으로 돌아오고, 이것이 국내 업주들에게 가격을 높게 책정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콜키지 가격이 수시로 변하고 때로는 정해진 가격 없이 주인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실상의 ‘시가’ 콜키지가 생겨나기도 한다.

들쑥날쑥한 국내와 달리 1970년대부터 콜키지 문화가 정착해온 해외의 콜키지는 대체로 1만원에서 5만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글로벌 요리업체 조사를 보면, 일본 도쿄 식당은 평균 3만1500원, 영국 런던은 2만9000원, 파리는 2만4500원이었고, 콜키지가 흔한 시드니는 1만3000원이었다.

◇“식당서 파는 가장 싼 술과 같은 가격으로 정하라”

주류 전문가들은 “해외 콜키지는 대상 주류가 ‘와인’으로, 서비스 내용은 ‘코르크 개봉과 서빙’으로 굳어져 왔기 때문에 기준이 잡힌 것”이라고 얘기한다. 실제 미국의 글로벌 레스토랑 집기·용품 유통 업체인 웹스토랑스토어는 식당 창업자들에게 ‘와인 콜키지는 10~40달러(약 1만3000~5만2000원)가 적절하다’고 가격대를 제시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음료 매체들도 비슷한 가격대가 적절하다고 밝히고 있다.

식당 측이 콜키지를 정하는 구체적인 방식도 제시돼 있다. “콜키지는 자기 매장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술 가격과 비슷하게 설정하라”는 게 해외 식·음료 관련 기업과 매체의 조언이다. 매장에서 파는 제일 싼 술이 3만원이면 콜키지도 3만원, 5만원이면 콜키지도 5만원을 받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이 정착되면, 술값이 5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콜키지로는 10만원을 받는 식당은 자연스레 외면받게 된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문화인 콜키지가 국내에선 갑작스레 유행하면서 상술을 부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과도기적 현상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국내에도 자연스레 적정한 가격 기준이 정착되겠지만, 그 전까진 업주들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콜키지의 유래

손님이 직접 술을 가지고 와서 마실 경우, 식당이나 술집이 잔을 내어주는 대가로 청구하는 서비스 비용을 말한다. 18세기쯤 서구에서 연회 음식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파티에 자기 와인을 가져와서 마시는 손님에게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와인 병 뚜껑(코르크) 수를 세던 것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1970년대 호주·영국 같은 나라에서 주류 판매 면허가 없는 식당들이 손님에게 술을 가져와 마시는 것을 허용하고, 잔을 제공하는 비용을 별도로 받으면서 콜키지 문화가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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