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헌법을 욕보이는 대통령 인사권
윤석열 대통령이 또 하나의 어록을 만든 듯하다. 보좌하던 비서관들을 대거 주요 부처의 차관으로 보내면서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의 정신과 시스템에 충성하라고 당부하였단다. 헌법국가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왜 화제가 될까? 말과 행동이 딴판인 ‘유체이탈 화법’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일찍이 ‘차관 통치’를 선보였던 MB 정부를 모방한 것부터 헌법정신이나 시스템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오랜 수험생활 동안 유신헌법과 독재 대통령제를 채택한 5공헌법을 너무 열심히 공부한 탓에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을 오독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지위를 부여한 현행 헌법 제66조는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의 해당 조항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로 물려받은 헌법 조항이라도 현행 헌법의 탄생 배경, 국가권력의 위계를 반영하는 조문 편제의 변경이나 대통령과 다른 국가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조항이 개정된 점에 비춰 대통령 지위 조항을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과 똑같이 해석될 수 없다. 현행 헌법에서 독재 대통령제의 삼권초월적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입법권 및 사법권과 수평적 권력분립의 관계에 있고,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과 수직적 권력분립의 관계에서 서로 견제·균형의 관계를 형성하는 민주공화대통령제의 대통령만 있다.
유신헌법은 삼권초월적 회의체를 상설하고 그 의장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하며 국회의원 정수 3분의 1을 사실상 임명할 권한과 법률적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를 통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는 독재적 지위를 부여했다.
국가권력의 편제도 대통령-정부-국회-법원 순으로 구성하고 아예 대통령과 정부를 분리된 장에 배치해 삼권초월적 지위를 분명히 했다. 5공헌법은 간선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대한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독재 대통령제였다. 반면 현행 87년 헌법은 대통령직선제로 개혁하고 긴급권도 국회 통제를 받도록 제도화했다. 권력편제 또한 국회-정부-법원 순으로 민주화했으며 행정부 인사권과 조직은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할 때에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다.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지위 조항도 유신·5공헌법의 조항과 다르지 않지만 권력구조의 근간이 바뀌었으니 이 또한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국무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만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이 있어야만 임명할 수 있다. 중앙 행정기관인 각 부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임명된다. 법률상 국무위원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받아야만 하므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중앙 행정기관을 책임지는 지위에 있으며 이를 우회하기 위한 차관을 통한 통치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셈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헌법과 법률이 시스템으로 구축한 국가기관의 본질적 기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인사권의 행사이다. 최근 통일부 장관으로 ‘김정은 정권 타도’ ‘북한체제 파괴’ 등 적대관계에서만 바라보는 이론가를 임명했다. 정부조직법은 통일부 장관에게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그 상대는 북한이므로 이번 인사는 남북교류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런 인사권 남용을 사법절차를 통해 통제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겠지만 국가기관의 존재의의를 무력화해 헌법의 위임에 따른 정부조직 관련 입법취지를 거스른 것으로 헌법수호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인사가 너무 빈발하다. “헌법에 충성할” 공무원의 교육을 담당할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윤 대통령이 그토록 문제시하는 ‘가짜뉴스’를 양산해온 극우 유튜버를, 진실과 화해를 중요 가치로 삼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공공연하게 과거사위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거나 소비에트에 비유하는 극우인사를, 사회통합을 위한 협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반노조 극우 정치인을 임명해왔다.
이러한 인사권 남용은 윤 대통령 스스로가 노조를 ‘노폭’으로, 시민단체를 ‘국고낭비 이권카르텔’로, 비판언론을 ‘가짜 뉴스 제조기’로, 전임 정부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갈라치기하면서 지지세력 결집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충성하라는 헌법은 어떤 헌법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문화했으나 독재 대통령제를 채택한 유신헌법인가, 5공헌법인가, 아니면 시민항쟁으로 민주공화대통령제를 성취한 87년헌법인가. 이래저래 헌법을 욕보이는 시대에 시민들이 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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