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퍼트릴 자유? [광화문]
모르는 번호로 휴대전화가 울리자 화면에 뜨는 앱 알림창이 스팸 주의보를 띄웠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앱이 사라진다면 '혹시 아는 사람일까?' 생각하게 될 것이고 결국 꽤 불편할 것이다. 카톡은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지인인 척 말을 걸 때 경고 그림과 알림을 노출한다. 안전장치가 없다면 사기 피해는 늘어날 수 있다.
거짓말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그 피해를 많은 이들이 알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를 억제하려고 한다.
지난달 13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간토대지진 100년의 교훈(5): 유언비어·폭력 한꺼번에 확산' 기사에서, 1923년 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사람들이 자경단을 결성해 칼과 도끼로 재일조선인을 무작위로 심문하고 묶고 폭행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의 2008년 보고서 내용을 전했다. 지진으로 인한 사망·실종자 10만명 중 이런 피해자가 1% 이상(수천명)이라고도 했다.
대표적인 보수 매체가 현지 우익이 인정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1면에 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거짓이 어떤 결과까지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글이기도 하다.
물론 진실과 거짓 옆에는 둘 중 하나로 지목할 수 없는 '의견'이라는 영역도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법원의 결정은 가짜뉴스마저 의견으로 보는 듯해 논란을 부른다.
4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주의 연방법원 판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거짓 정보 억제를 이유로 소셜미디어(SNS) 업체와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공화당 인사들이 제기한 관련 소송 과정에서 먼저 나온 조치다.
이는 판사가 미국 정부가 수정헌법 1조에 담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테리 A. 도티 판사의 155쪽짜리 결정문을 보면 사례들이 언급돼 있는데, 이를 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 중이던 2021년 4월 당시 백악관 디지털 전략 담당 이사 롭 플래허티가 구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있다.
이에 따르면 플래허티는 이메일에서 "유튜브가 사람들로 하여금 백신 접종을 꺼려하도록 유도하고, 사람들의 머뭇거림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고, 또 "이는 백악관 최고위층에서 공유되는 우려 사항이다"라고 썼다.
표현의 자유에 초점을 둔 명령이지만, 결과적으로 허위 정보를 가리는 노력은 이전보다 위축되기 쉽다.
소셜미디어의 힘이 크다는 것,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전 프랑스 폭력 시위 때도 드러났다. 당시 시위의 발단은 알제리 출신의 17세 소년 운전자가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려다 경찰 총에 사망한 사건이다.(6월 27일)
시위에는 10대 참가자가 유독 많았다. 시위로 구금된 사람 30%가 18세 이하라는 정부 쪽 발표도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틱톡 등이 폭력적인 모임을 만들고 모방행동을 부추기는 데 사용됐다며 우회적으로 책임을 물었다.
단순히 부추긴 것만은 아니다. 허위 콘텐트도 많았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지난 1일 한 트위터 계정에는 주차 타워에서 차량이 떨어져 거리의 다른 차들과 부딪친 뒤 폭발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힌두어로 뜨는 자막에는 "프랑스가 세속적 자유주의자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는데, 결과를 보라"고 했다. 반이슬람 성향의 글인데, 영상은 사실 영화 '분노의 질주-패스트 앤 퓨리어스'의 장면이다. 이뿐 아니라 반이민 성향 계정에도 엉뚱한 영상을 이번 시위 장면인 듯 올린 콘텐트들이 여럿 올라왔다. 사망 사건으로 이민자 차별 문제가 관심을 모았지만 정작 상관 없는 방화, 약탈도 많았고 중국인 관광버스는 시위대의 투석 공격을 받았다.
스팸 전화, 피싱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피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허위 정보가 퍼지는 것을 그냥 두는 것도 좋지 않다. 미국 법원의 결정이 왜곡된 신호가 되지 않길 바란다.
김주동 국제부장 news9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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