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국형 오컬트물의 진화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3. 7. 7. 0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수록 우리만의 독창적인 내용이 중요해진다. 특히 한국적인 특색을 많이 지니는 TV드라마의 정체성에 따른 새로운 시도가 중요하다. 이를 잘해낼 수 있다면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문화 자원을 글로벌 포맷인 오컬트물에 적용한 드라마 '악귀'의 시도는 의미 있게 보인다.

드라마 '악귀'는 한국형 오컬트물을 표방했다. 오컬트(Occult)물은 물질과학 법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세상 이면의 모습을 다루는 콘텐츠로 특히 젊은 세대가 관심이 많은 장르다. 드라마 '악귀'는 원혼의 심령현상을 통해 묵직한 화두도 전한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악귀로 여기는 민속학자와 연쇄살인범으로 추측하는 형사 사이에서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여주인공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사회 모순을 인식하게 한다.

우선 인상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외면받은 민속학 연구를 등장시키며 다양한 우리 전통문화 요소를 드라마 곳곳에 배치해 극적 흥미를 자아내는 점이다. 건강과 안전을 바라는 염원을 담아 어린 여자아이에게 해주던 '배씨댕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막기 위한 문화자원을 통해 역사적 전통 사회에서 행복과 안녕을 바란 마음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드라마의 사회적 미덕은 역사적 자료 등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점은 물론 초자연적 심령현상에 갇혀 있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연결해낸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주인공 어머니, 가정은 물론 학교폭력에 고통받는 청소년, 악덕채무업자에게 시달리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전통사회만이 아니라 현재도 억울하게 고통받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계속 발생하는 현실을 드러내주려 한다. 이는 한국적 공포스릴러물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예컨대 '전설의 고향' 같은 작품이 주로 억울한 원혼의 한을 풀어주는 해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드라마 '악귀'는 서양과는 다른 원혼과 복수의 스토리라인을 구축했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사연을 드러내면서 오컬트물임에도 당대의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문화적 여론도 환기한다. 이를 통해 귀신의 존재가 있느냐 아니냐 하는 존재론적 물음에 빠지지 않아 공적 가치도 지향한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어젠다가 무엇인지 부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도시 개발지역이 예전 전통사회의 사연과 문화적 공간이었음을 강조해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허재비놀이 당제를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다시 새겨보게 한다.

다만 전통사회나 지역, 무속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지 않게 주의할 점도 있어 보였다. 특히 염매, 태자귀 개념처럼 전통사회가 모두 비과학적 신념에 무조건 경도돼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하는 비합리적인 사회라는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어 보였다. 이제는 대중적이지 않은 민속학에 대한 오해도 최대한 주의해야 할 것인데 민속학 교수가 K팝을 전혀 듣지 않고 무속음악만 듣는다는 설정도 이에 속한다.

특히 한때 지상파 드라마는 오컬트 코드를 차용해 OTT나 케이블TV 같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의 내용이 횡행했다. 사회적 가치는 적고 공공적 화두는 생각할 수 없는 사례가 빈번했다. 슬러시무비처럼 단순히 살인과 폭력에 스릴러 요소만 범벅인 경우도 많았다. 이에 비해 드라마 '악귀'는 잔혹스릴러 공포물에서 벗어난 지상파 드라마의 좋은 전형을 보여준다. 대중적 흥미는 물론 사회적 의미와 가치까지 겸비하는 것이 K콘텐츠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려스러운 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살려 세계무대에서 공공성을 지닌 한국형 오컬트물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