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7·7선언 35주년, 길 잃은 북방외교

2023. 7. 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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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진영간 대결 선명
美·日과 협력 중요하지만
러·中과 관계 도외시 못 해
상황 맞게 신중 대응 필요

35년 전 오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이 발표됐다.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남북한 간 교류와 문호개방 등을 천명한 7·7선언은 ‘북방정책’의 출범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북방정책의 결과 대한민국은 1989년 2월 헝가리와 수교한 데 이어 1990년 9월 공산권의 맹주 소련과, 1992년 8월에는 중국과,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베트남과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노태우정부 시기 새롭게 수교한 국가가 45개국에 이를 정도로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은 크게 확대되었다.

제6공화국의 북방정책은 한반도의 냉전적 대결구도를 완화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1991년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루어졌다. 더 나아가 같은 해 12월에는 남북한 화해와 교류·협력의 기본 틀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가 공표되고, 1992년 1월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노태우정부는 북방정책을 통해 외교영역을 넓히고자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빗장을 풀어 그들을 평화통일의 길로 이끌어 내려고 했다. 더 나아가 북방정책은 한민족의 문화적, 경제적 활동무대를 대륙 국가들로 확대하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각도에서 북방정책은 ‘전환기의 대전략’이었다.

북방정책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글로벌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한 국제체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소련의 개혁·개방과 신사고 외교정책으로 인해 냉전적 대결구도가 허물어짐에 따라 미국은 대한민국의 공산권 접근에 대해 ‘우호적 방임’ 정책을 취했다. 리더십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헨리 키신저는 최근 출간한 저서 ‘리더십’에서 “리더에게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황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라고 설파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방정책은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 변화에 기민하게 편승해 대외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택한 리더십의 산물이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북방정책은 북한의 핵 개발과 세계화 등 다른 이슈에 밀려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가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신북방정책’이 각각 추진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등 대륙 국가들과 에너지, 인프라, 교통·물류 등 여러 부분에서의 협력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글로벌 및 한반도 주변 정세는 매우 복잡해졌다. 미국과 중국은 공급망 재편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장기전으로 들어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대만 문제가 국제 안보의 또 다른 뇌관이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함으로써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고조시켰다. 그러한 안보상황으로 북·중·러와 한·미·일 사이의 진영 대립구도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 아무도 북방외교를 말하지 않는다. 신냉전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타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대러 규탄과 경제 제재에 합류했다. 러시아도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규정했다. 그 결과 한·러 교류와 협력은 동결되거나 축소되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딪치는 전선이자 서로 교류하고 어울리는 문명의 교차로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두 세력 모두 상대해야 한다. 미국, 일본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러시아, 중국 등 북방국가들과의 관계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지정학적 지형과 국가 간 관계는 늘 변화한다. 그 속에서 생존을 지키고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는 발빠른 대응뿐 아니라 신중함과 장기적 안목, 그리고 때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35주년을 맞은 7·7선언의 역사적 교훈이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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