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시험공화국의 ‘킬러 문항’

2023. 7. 7. 00:2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국은 시험공화국이다.

고려 이래의 과거제 전통도 있겠지만, 능력과 소양을 가늠할 다양한 평가수단 만들기에 등한한 탓이 큰 듯하다.

'경쟁의 공정성'을 맹목적으로 인정하며, 시험의 과학성을 높인다든가 평가방법을 바꾸는 데는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 편이다.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시험의 목적과 실제 교육에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시험공화국이다. 고려 이래의 과거제 전통도 있겠지만, 능력과 소양을 가늠할 다양한 평가수단 만들기에 등한한 탓이 큰 듯하다.

시험 만능이다 보니 그게 목적에 맞지 않거나 수준이 낮은 경우도 많다. 한데 놀라운 사실은, 시험 결과를 잘 받아들임은 물론 시험 자체에 대해서도 별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쟁의 공정성’을 맹목적으로 인정하며, 시험의 과학성을 높인다든가 평가방법을 바꾸는 데는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 편이다. 객관식 시험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믿는 이 시험공화국은 시험에 대해 비합리적이다.

지금 한국의 ‘국가적’ 시험은 수능인데, 늘 난이도 조절이 난제이다. 중요한 시험인지라 유독 논란도 많다. 최근 또 거론된 이른바 ‘킬러 문항’을 보자. 이 살벌한 명칭은 비유일 뿐이다. 그게 ‘어려운 문항’을 가리킨다면, 비율이 적당하면 문제가 안 된다. ‘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문항’이라면 무슨 교과의 어떤 범위인지 고려해야 한다.

국어영역 비문학 문항을 보자. 현재 중등학교 국어교육은 언어활동(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 위주가 아니라 온갖 지식 위주이다.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시험의 목적과 실제 교육에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처럼 ‘능력의 수준’에 소홀한 상황에서 난도를 높이려 할 때 ‘지식의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경제학, 생물학 등의 전문지식이 담긴 어려운 지문을 내놓고 난도를 높였다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능력보다 (배경)지식의 이해가 앞서는, 국어(전에는 ‘언어’)영역에서 먼 문항이 된다.

글 읽는 능력은 어떤 지문으로든 가늠할 수 있다. 지문을 쉽게 출제하거나 시험범위를 명시하자는 게 아니다. 문해력 위주로 접근하면, 가령 글의 맥락, 제재, 관점과 사상 등을 파악하는 ‘언어능력 수준’을 평가대상으로 삼으면 지식이 무리하지 않은 글을 가지고도 합리적으로 ‘국어영역다운’ 난이도 조절이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언어능력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그것을 평가한다는 모순이다.

수능 수험생들은 문학작품도 ‘문제 유형’별로 학습한다. 시험과 교육의 관계가 뒤집힌 것이다. 문제집이 교과서를 몰아낸 이 시험공화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수능의 비합리성은 근원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