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호의플랫폼정부] 과학적 행정, 데이터만 있으면 되나

2023. 7. 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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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판단·집행의 합리적 근거로 활용
공무원 과학적 사고 전환도 병행돼야
얼마 전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핵심은 행정부 이외에 공공기관과 헌법기관 등도 데이터 공유를 의무화하는 데 있다. 기관 간 칸막이를 허물어 통합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이나 사업을 과학적으로 기획하라는 취지다. 의도는 바람직하고 오래전에 이미 그렇게 행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행정을 하자는 것이다. 자의적이며 주관적이고 근거가 미흡한 행정행위가 아니라 과학적이며 분석적으로 정책 이슈를 발굴하고 다양한 대안의 상호비교를 통하여 가능한 최적안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행정의 이런 모습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행정행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는지 궁금해진다. 데이터 관리에 대한 인프라 구축의 미흡이나 충분한 정부 데이터가 축적되지 못한 부분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지만, 분야별로 축적된 일부 데이터마저도 일상적인 행정과정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모습을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혹시 다른 더 중요한 요인을 놓치고 공급자적 관점에서 법제도나 인프라 구축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대목이다.

데이터 확보와 제공 못지않게 정책 자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정책이 순수하게 데이터와 같은 근거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면 극단적으로 사람이 필요 없고, 기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 아마도 인공지능(AI)이 언뜻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정책 과정에는 다양한 이해와 가치를 추구하는 복수의 참여자가 존재한다.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치과정의 산물이며 타협과 조정 없이는 정책의 성공적 추진이 불가능하다, 참여자들의 중요한 정책적 고려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이며, 결국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결정이 데이터와 같은 객관적 기준에 따른 기계적인 과정이 될 수 없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갈등이 정책 과정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있으면 마치 정책이 큰 소란 없이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 같이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성공적인 정책은 정책 과정 전반에 걸쳐서 참여자들 간의 설득, 타협, 협력 확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따라서 데이터 기반 행정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먼저, 데이터 활용의 개념을 다차원적으로 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책 수단을 선택하기 위해 데이터의 직접적인 활용을 주장하는 좁은 개념 이외에 정책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설득에 필요한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고, 담당자들이 정책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계몽적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더 시급한 것은 정부 정책이나 사업들을 기획할 때 자연스럽게 근거를 먼저 고려하는 공무원들의 합리적인 태도나 조직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데이터를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터에 국한하지 말고 데이터를 포함한 근거(evidence) 개념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다양한 근거 활용을 통해 특정한 정보나 정보 소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앵커링(anchoring)과 같은 인지적 오류를 방비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데이터 이외에 평가보고서, 전문가 의견 등도 정책적 판단의 합리적 근거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데이터 기반 행정행위로 변할 수는 없다. 중장기계획 등 의무 적용 대상을 넘어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작은 과제부터 근거를 기반으로 기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축적되어야 더 큰 정책 단위에서도 합리적인 접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데이터가 과학적 정책을 만들어 준다는 착각을 경계해야 하며, 사람이 과학적 사고를 할 때 데이터도 필요한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칸막이식 행정행위를 깨부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문화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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