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서로 존댓말을 쓰면 차별과 억압이 사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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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존대하자’는 캠페인이 사회 곳곳에서 조용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같은 조직에서도 나이와 직급에 상관 없이 서로 존댓말을 쓰자는 것이죠. 부장과 과장과 평사원이 서로 존댓말을 쓴다면 서로 존중하는 조직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초등학교까지 이어져 친구들끼리 “철수님, 주공아파트 1단지에 사시죠? 아침에 같이 학교 갈래요?”라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지식산업사)을 냈던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였습니다. 처음에 그 책을 보고 ‘한국학 전공자가 사회경제학 얘기를 할 리 없을텐데’라며 의아해했던 생각이 납니다.
인터뷰 때 최 교수는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는 차별과 억압의 근본적 원인은 ‘존댓말’과 ‘반말’로 이루어진 ‘존비어(尊卑語) 체계’에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어 특유의 ‘존댓말과 반말’ 시스템이 한국 사회를 유사(類似) 신분관계로 뒤틀리게 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것이죠. 이게 무슨 말인가 좀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야말로 장유유서의 아름다운 예절을 굳건히 지켜주는 우리말만의 장점이라고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최 교수는 단호하게 ‘그게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존비어 체계를 갖춘 언어를 사용하는 까닭에 모든 사물을 ‘위와 아래’ ‘존귀함과 비천함’의 관계로 바라보려는 무의식적인 인지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등과 호혜보다는 차별과 억압 관계를 훨씬 더 당연하고 편안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예컨대 어느 한 조직에서 장(長)에게 존댓말을 쓰고 높일 경우,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로부터 하대(下待)를 당하며 차별받는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수평적 방식의 소통’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만들고, 완고한 형식적 권위주의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늦게 입대한 24세 이등병은 21세 일등병에게 ‘야, 밥 먹자’고 하고 싶지만, 실제 표현은 항상 “김 일병님, 식사 하십시오”가 된다는 것이죠. 말과 표현이 달라지는 ‘생각과 소통의 이중성’이 일상화된다는 얘깁니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만드는 이와 같은 언어 속에서 자유로운 토론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하급자가 제대로 된 토론을 하고 싶을 때는 “계급장 떼고 해 보자”는 거친 말이 나오게 됩니다. 자유 토론을 제안했던 상급자도 불리한 분위기에선 “막 가자는 거지요”란 식으로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언어체계는 전통적 신분사회에선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민주화로 접어든 사회에선 중요한 걸림돌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존비어 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존대’를 받거나 ‘하대’를 당하는 극단적인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존대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도한 권력욕에 빠져 엄청난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죠.”
최 교수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미 1970년대부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우군’은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학자들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책에 각주를 붙일 수조차 없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사람들은 “(존비어야말로) 우리를 예절바르게 해 주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비어 체계가 없이 호칭에 대한 높임말만 있는 서구 많은 나라들의 경우 결코 예절이 문란한 사회가 아닌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절의 근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존비어 중에서 ‘반말’을 없애고 서로를 높이고 존중하는 체계로 바꿔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언어에 의한 형식적 위계질서를 벗어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할 때, 차별과 억압을 벗어난 수평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주 친하다고 생각하는 후배, 또는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의 경우 저는 제가 반말을 쓰는 것이 친근감의 표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론 먼저 존댓말을 써 보고 반응을 살펴봐야겠습니다. “후배님, 기사를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신다니 정말 능력이 안 되는 겁니까?”(사실 저희 부서에 이런 말을 할 만한 후배는 존재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 본 것입니다) 아, 이렇게 말하면 내용상 갑질이 될 테니 곤란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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