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새에서 국민 음식으로, 닭고기의 기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남방지역 살던 닭, 북방으로 전파
실제로 닭의 기원에 논란이 많은 이유는 꿩과 헷갈린다는 데에 있다. 살아있는 닭과 꿩은 깃털의 색깔로 쉽게 구별이 된다. 하지만 뼈만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가 되면 사정이 달라져서 전문가도 헷갈릴 정도다. 그리고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처럼 둘의 고기 맛은 비슷하다. 남방의 더운 곳에 닭이 있다면 한국을 포함한 북방 유라시아에는 꿩이 널리 살았다. 지금도 연변 지역에서는 ‘솥뚜껑만 열면 꿩이 스스로 날아 들어온다’는 농담처럼 꿩이 지천에 널리 산다. 즉, 산과 숲이 울창한 북한과 만주에서는 굳이 집에서 모이를 주며 닭을 키우는 것보다 꿩 사냥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과거 북방 지역은 꿩을, 남방 지역은 닭을 주로 키웠다. 삼국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닭뼈의 DNA 분석 결과 한국의 전통적인 닭은 중국 윈난 지역에서 많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남방에서 도입된 닭은 훗날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삼국시대 때 신성시됐던 닭
고대 우리 신화를 보면 닭은 남방 지역과의 교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닭은 다른 가축과 달리 사람이 안고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쉽게 바다를 건너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반도 남부에도 닭과 그들의 생명력을 대표하는 계란과 관련 있는 난생신화가 널리 분포한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김알지가 태어날 때는 닭이 숲에서 울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도 신라를 ‘계림’으로 불렀다. 신라 천마총에서는 달걀이 출토된 적이 있고, 닭은 식용이 아니라 신라 권력의 상징이었고 그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닭’으로 대표되는 신라인의 정체성은 멀리 인도에까지도 알려졌다. ‘삼국유사’에 보면, 인도(천축)에서는 신라를 구구타예설라(矩矩吒䃜說羅)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무슨 암호 같은 말인가 싶지만 하나씩 풀어보면 이해가 된다. 구구타는 닭을 뜻하는데 인도-유럽어 계통인 산스크리트에서 닭 울음의 의성어가 ‘쿠쿠(kuku)’라는 것과 관련 있다. 예설라는 귀하다(貴)는 뜻이다. 신라가 닭의 신(雞神)을 공경한다는 뜻이고, 신라와 고구려의 모자 장식은 새 깃털이 있으니 이는 모두 새를 숭배하는 증거인 셈이다.
가야 - 마한에도 있던 닭의 신화
남한의 삼국시대에 발달된 신령한 닭을 믿는 전통은 일본으로도 확산됐다. 일본 열도 가운데 한국에 가까운 규슈 지역에서 2000년 전에 만든 야요이 시대 무덤에서 닭뼈가 함께 발견되기 시작한다. 물론 일본에서는 동남아에 가까우니 한국보다 다양한 닭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덤에서 발견되는 닭뼈는 식용이 아니라 무덤과 제사 의식에 사용된 것이었다. 지금도 신성한 닭의 전통은 계속되는데 아침에 새벽을 깨우는 길조로, 또 마귀를 쫓아내는 영물로, 그리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로 전통 혼례식에도 쓰인다.
인간사와 함께한 귀한 동반자
힘없고 작아 보이기 때문에 다른 가축과 달리 닭은 단순한 요리 재료로만 평가 절하되고 있다. 그렇지만 고고학은 닭이 사람과 함께하는 가장 소중한 동반자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가축과 달리 닭과 병아리는 쉽게 사람과 이동할 수 있다. 농민들이 어딘가로 이주한다면 현지에서 손쉽게 단백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닭과 병아리를 함께 데리고 가서 키우며 농사를 지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개와 함께 가장 가깝게 살았던 동물이다. 삼계탕이나 백숙 요리는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의 ‘치킨’이라는 음식은 지금도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고대 신의 역할을 하던 닭은 이제 더는 없다. 하지만 삼계탕과 치킨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고립되고 각박해지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여전히 닭은 우리에게 귀한 존재가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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