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새에서 국민 음식으로, 닭고기의 기원[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3. 7. 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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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닭은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요리 재료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장년층이라면 어렸을 때 귀하게 먹었던 통닭을 떠올린다. 그리고 스포츠 경기나 피크닉을 가면 치킨으로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심지어 한류 열풍으로 한국식 치킨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한국의 닭요리로도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고대에서는 신라 박혁거세 탄생 과정에 등장하는 계림의 이야기처럼 닭은 고대 사회에서 신령한 존재였다. 신의 자리에서 80억 인류가 제일 사랑하는 요리가 된 닭, 그들은 어떻게 인간의 역사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남방지역 살던 닭, 북방으로 전파

중국 쓰촨(四川)성 싼싱두이에서 발견된 3000년 전 닭 모양 청동 공예품. 닭을 숭배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다(왼쪽 사진).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금동관. 전면의 장식은 닭 또는 봉황 모양으로 추정된다. 강인욱 교수 제공
고고학계의 통설은 동남아시아나 인도 같은 더운 곳에서 닭의 가축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닭의 직계 조상으로 꼽히는 ‘적색야계’(들닭이라고도 함)가 주로 서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에서 닭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학자들은 허베이성의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인 츠산에서 가축화된 닭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 유적의 집자리에서 발견된 닭뼈를 분석해 보니 야생 닭보다 크기가 크고 수컷의 비율이 많아서 집에서 키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설은 많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실제로는 닭이 아니라 꿩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닭의 기원에 논란이 많은 이유는 꿩과 헷갈린다는 데에 있다. 살아있는 닭과 꿩은 깃털의 색깔로 쉽게 구별이 된다. 하지만 뼈만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가 되면 사정이 달라져서 전문가도 헷갈릴 정도다. 그리고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처럼 둘의 고기 맛은 비슷하다. 남방의 더운 곳에 닭이 있다면 한국을 포함한 북방 유라시아에는 꿩이 널리 살았다. 지금도 연변 지역에서는 ‘솥뚜껑만 열면 꿩이 스스로 날아 들어온다’는 농담처럼 꿩이 지천에 널리 산다. 즉, 산과 숲이 울창한 북한과 만주에서는 굳이 집에서 모이를 주며 닭을 키우는 것보다 꿩 사냥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과거 북방 지역은 꿩을, 남방 지역은 닭을 주로 키웠다. 삼국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닭뼈의 DNA 분석 결과 한국의 전통적인 닭은 중국 윈난 지역에서 많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남방에서 도입된 닭은 훗날 일본으로도 건너갔다.

삼국시대 때 신성시됐던 닭

고대 우리 신화를 보면 닭은 남방 지역과의 교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닭은 다른 가축과 달리 사람이 안고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쉽게 바다를 건너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반도 남부에도 닭과 그들의 생명력을 대표하는 계란과 관련 있는 난생신화가 널리 분포한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김알지가 태어날 때는 닭이 숲에서 울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도 신라를 ‘계림’으로 불렀다. 신라 천마총에서는 달걀이 출토된 적이 있고, 닭은 식용이 아니라 신라 권력의 상징이었고 그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닭’으로 대표되는 신라인의 정체성은 멀리 인도에까지도 알려졌다. ‘삼국유사’에 보면, 인도(천축)에서는 신라를 구구타예설라(矩矩吒䃜說羅)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무슨 암호 같은 말인가 싶지만 하나씩 풀어보면 이해가 된다. 구구타는 닭을 뜻하는데 인도-유럽어 계통인 산스크리트에서 닭 울음의 의성어가 ‘쿠쿠(kuku)’라는 것과 관련 있다. 예설라는 귀하다(貴)는 뜻이다. 신라가 닭의 신(雞神)을 공경한다는 뜻이고, 신라와 고구려의 모자 장식은 새 깃털이 있으니 이는 모두 새를 숭배하는 증거인 셈이다.

가야 - 마한에도 있던 닭의 신화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의 집 모양 토기. 지지대가 닭다리 모양이다. 강인욱 교수 제공
닭을 신성시하는 전통은 삼국시대 마한과 가야에도 있었다. 1995년에 경남 고성군 동외동의 서기 3∼4세기 가야 고분 근처에서 제사를 지낸 구덩이에서 아주 특이한 청동기가 출토됐다. 손바닥 정도 크기인 8.9cm의 청동기에는 가운데에 닭같이 벼슬이 있는 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고 그 주변에는 빽빽하게 고사리 무늬가 새겨져 있다. 놀라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뒤에 마한의 중심인 전남 영암군 수동마을에서도 똑같이 생긴 새 모양의 청동기가 출토된 것이다. 지금이야 마한과 가야라고 하면 서로 다른 집단처럼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같은 제사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닭처럼 생긴 신령한 새를 모시는 풍습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닭을 신성시하는 문화를 찾을 수 있다. 북유럽의 유목 민족인 사미인들은 닭다리 모양의 지지대를 받친 집에 신이나 정령이 산다고 믿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가야에서는 특이하게도 닭다리를 한 집 모양의 토기도 있다. 특히 경남 함안 말이산의 가야 무덤에서 발굴된 집 모양 토기는 특별하다. 마치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한 다리와 닭의 다리가 표현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집 모양의 토기는 그냥 일상적으로 집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실제 사용보다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의미가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닭 모양의 집은 사실 가야뿐 아니라 북반구 유라시아 일대에서 널리 발견된다. 특히 핀란드의 유목민인 사미(랍)인과 슬라브인들 사이에는 신이나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는 닭다리를 한 오두막집을 만들었고 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이 머나먼 바닷가 신화의 섬을 노래한 ‘루코모리예(머나먼 바닷가)’라는 시에도 닭다리를 한 집이 등장한다. 가야나 북구의 닭다리 집은 공통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니 영혼이 사는 집을 영원한 안식처로 데려간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남한의 삼국시대에 발달된 신령한 닭을 믿는 전통은 일본으로도 확산됐다. 일본 열도 가운데 한국에 가까운 규슈 지역에서 2000년 전에 만든 야요이 시대 무덤에서 닭뼈가 함께 발견되기 시작한다. 물론 일본에서는 동남아에 가까우니 한국보다 다양한 닭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덤에서 발견되는 닭뼈는 식용이 아니라 무덤과 제사 의식에 사용된 것이었다. 지금도 신성한 닭의 전통은 계속되는데 아침에 새벽을 깨우는 길조로, 또 마귀를 쫓아내는 영물로, 그리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로 전통 혼례식에도 쓰인다.

인간사와 함께한 귀한 동반자

힘없고 작아 보이기 때문에 다른 가축과 달리 닭은 단순한 요리 재료로만 평가 절하되고 있다. 그렇지만 고고학은 닭이 사람과 함께하는 가장 소중한 동반자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가축과 달리 닭과 병아리는 쉽게 사람과 이동할 수 있다. 농민들이 어딘가로 이주한다면 현지에서 손쉽게 단백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닭과 병아리를 함께 데리고 가서 키우며 농사를 지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개와 함께 가장 가깝게 살았던 동물이다. 삼계탕이나 백숙 요리는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바삭하고 고소한 맛의 ‘치킨’이라는 음식은 지금도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고대 신의 역할을 하던 닭은 이제 더는 없다. 하지만 삼계탕과 치킨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고립되고 각박해지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여전히 닭은 우리에게 귀한 존재가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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