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기억해야’ 여·순·4·3 역사기행

이성각 2023. 7. 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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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한국현대사의 아픔 중 하나인 여수·순천 10·19사건과 제주 4·3은 특별법 제정으로 온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겐 여전히 낯선데요,

지역의 대학생들이 두 사건의 역사현장을 찾아 의미를 기억하고 추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발생한 여수·순천 10.19 사건...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군이 요새로 삼았던 여수 신월동은 여순사건 당시 14연대 주둔지였습니다.

[서희종/여수지역사회연구소 사무국장 : "제주를 토벌하자는 명령에 부당하다고, 같이 이에 동조했었던..."]

순천 매산등 학살지와 순천대, 동천 제방, 그리고 여수의 형제묘까지 여수와 순천 도심 곳곳에는 여순사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에게조차 여순의 현장은 가깝지만 생소한, 그래서 새삼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김시연/순천대 법학과 : "제가 잘 모르고 있었구나. 심지어 대학 캠퍼스 안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많이 몰랐구나하는 생각에 반성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제주 4·3...

4·3 평화공원을 빙 둘러 세워진 비석과 그 속에 빼곡히 새겨진 만 3천여 명의 이름 앞에서는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오승국/4·3트라우마센터 전 부센터장 : "4·3의 음의 기록까지 (비석에)간단히 정리를 다 해놨어요."]

마을사람의 절반인 3백 명이 집단학살된 제주 북촌사건 현장과 애기무덤, 그리고 4.3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져 빈터만 남은 곤을동 유적지에선 남겨진 유족들의 아픔을 가늠해봅니다.

[이다연/광주교대 초등교육과 : "(유가족들의)아픔이 얼마나 큰지 깊게 생각해보고 그리고 저는 예비교사 입장이다 보니까 현장 교사가 되었을 때 이 사건의 아픔과 진실을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제주 4·3과 여순사건의 아픈 기억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되새기는 기회가 된 이번 대학생 역사기행은 KBS순천방송국 특별기획으로 마련됐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김종윤

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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