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유기를 보는 두 시선 “아무리 힘들기로…이해 못해” “오죽하면…사회 환경도 고려”
친모가 자녀 2명을 살해해 냉장고에 유기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영아 학대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9년간 경찰이 검거한 영아 유기 혐의 피의자의 59%는 10·20대였다.
경향신문은 10대, 20대에 출산해 자녀를 키우고 있는 비혼모 2명과 지난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전 양육을 혼자 떠맡은 데다 아이의 생부, 가족 등에게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 이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두 엄마는 영아를 유기하는 행위는 “악한 행동”이지만, 아기들이 유기되는 사회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살 아들과 살고 있는 서희수씨(20·가명)는 지난해 ‘쇼핑백 영아 시신 유기 사건’을 듣고 처음엔 화가 치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죽 힘들고, 돈 없고, 애 키울 환경이 안 되면 그랬을까.”
서씨는 식사를 차려주기는커녕 1만원 정도인 반 티셔츠 값조차 주지 않는 부친에게서 벗어나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출했고, 이듬해 임신했다. 서씨는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비혼모 쉼터 다섯 곳과 상담했지만 대부분 시간과 비용이 드는 코로나19 음성 검사 결과지와 건강검진 결과지를 요구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오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집에서 멀고, 다른 아기가 베이비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영상만 봐도 눈물이 나서” 포기했다고 했다.
아들이 돌도 되지 않았을 때 남자친구와 헤어진 서씨는 이후 약 6개월간 지인 집을 전전했다. 결별 후 양육비는 한 푼도 못 받았다. 서빙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아기 엄마는 못 쓴다. 아기가 아프면 빠지려 한다”는 식당 주인의 말을 듣고 펑펑 운 적도 있다고 했다.
서씨는 “사람들이 영아 유기 사건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바라봤으면 한다”며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에게는 자립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쉼터 도움으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른 그는 대학에 입학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을 얻어 자립했다.
이민지씨(24·가명)도 임신, 출산, 육아의 짐을 홀로 떠안았다. 이씨가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남자친구는 아이를 같이 키우겠다고 했지만, 임신 9개월차에 돌연 임신중단을 강요했다. 2021년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간 입원했을 때도 남자친구는 병실에 한 번도 오지 않았고, 새로 생긴 애인과 함께 있었다. 이씨는 생후 2주차인 아들을 데리고 비혼모 쉼터로 향했다.
이씨는 비혼모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이씨 역시 아이를 유기하는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다만 “아이를 버린 엄마 잘못도 있지만 책임지지 않은 아빠도 아이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모가 둘 다 있어야 아기가 태어나는 거 아니냐. ‘여자가 애 낳고 알아서 하면 되지’라며 양육을 책임지지 않은 생부들도 똑같이 처벌을 세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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