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생 [만물상]

김성민 논설위원·디지털기획팀장 2023. 7. 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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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아마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2020년 방영한 드라마 ‘업로드’의 주인공은 생사의 기로에서 디지털 영생(永生)을 택한다. 자신의 뇌를 통째로 디지털화해 가상 세계에서 부활한다. 현실 세계에 있는 여자친구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고 버튼 하나로 창문 밖 풍경을 여름에서 겨울로 바꿀 수 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이 해당 데이터 삭제를 요청하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살 수 있다.

▶미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바흐보우는 2021년 사별한 약혼자를 인공지능(AI)으로 되살렸다. 살아있는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학습시켰다. AI로 부활한 약혼자는 그들만의 암호를 이해했고, 바흐보우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바흐보우는 이를 통해 사별의 아픔을 달랬다. AI의 발달로 죽은 사람의 목소리·얼굴을 재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가수 김광석, 신해철을 AI로 복원해 만든 무대와 라디오 콘텐츠도 나왔다. 작년 한 국내 스타트업 기업은 세계 최초로 부모님의 생전 모습을 AI로 재현하는 ‘리메모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엊그제 국방홍보원이 AI 기술로 부활시킨 순직 조종사 박인철 소령이 어머니와 만났다. 박 소령은 순직한 아버지를 따라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가 27세에 훈련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AI 기술로 모니터 속에 부활한 박 소령은 환하게 웃었고,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국방부는 박 소령이 생전 남긴 음성과 사진, 동영상을 AI에 학습시켰다고 했다. 16년간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어머니의 볼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미 실리콘밸리의 테크 거물들은 영생이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본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뇌를 업로드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순간에 뇌 속 정보를 데이터로 만들어 저장하고, 이 데이터를 로봇에 주입해 로봇 몸에 자아를 가진 영생의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같은 사람은 육체적 노화를 방지해 영생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류가 불멸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다고 예측한다.

▶디지털 영생은 양날의 검이다. 윤리적 문제부터 만만찮다. 고인의 ‘잊힐 권리’를 뺏고, AI로 부활한 고인 데이터를 탈취해 사이버 범죄에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과 진시황부터 꿈꿨던 영생이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예단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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