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줄고·수출 부진에 국내 여유자금 14조↓…‘3년래 최저’

한은 ‘1분기 자금순환’ 들여다보니
국내 순자금운용 1조2000억 그쳐
경기 둔화로 세수 24조 감소 영향
정부, 순자금조달 12조 넘게 증가
금융기관 대출금 31조 ‘역대 최대’
가계 여윳돈 12조↑ 3년 만에 최고
부동산 위축에 대출 줄고 예금 늘어

1분기 국내 전체 여유자금이 지난해보다 14조원 가까이 줄어들며 3년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와 기업에서 세수 감소, 수출 부진 등으로 돈을 빌리는 규모가 늘어나면서다. 반면 가계 여유자금은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이 감소하고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이 늘어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중 자금순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 국내부문 순자금운용 규모는 1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5조1000억원)보다 13조9000억원 감소한 규모로, 2020년 2분기(-1조4000억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순자금운용이란 해당 경제주체의 여유자금을 의미한다. 예금, 주식, 펀드 등 금융자산 거래액에서 대출금 등 금융부채 거래액을 뺀 값이다. 자금운용보다 자금조달이 커 여유자금이 마이너스가 되면 순자금조달로 표현한다.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이 늘어나면서 국내 자금운용 규모가 감소했다.

정부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23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0조7000억원) 대비 12조4000억원 확대됐다. 이는 2020년 4분기(36조3000억원) 이후 최저치로, 국내 경제주체 중 순자금조달 규모가 가장 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은 24조원 감소했는데, 경기 둔화와 부동산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금은 31조원을 기록해 역대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기업의 여유자금도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1분기 비금융법인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42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조원 확대됐다. 고금리에 부정적 경기 전망 등이 겹치며 대출금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은 크게 줄었지만, 기업실적 부진과 금리부담 등으로 예금 인출이 늘어나며 금융자산이 급감한 영향이다. 한은 관계자는 “수출 부진에 따른 영업이익 축소 등으로 기업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순자금조달 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기업과 달리 가계의 여유자금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스1

올해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액은 76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64조8000억원) 대비 12조1000억원 급증했다. 이는 2020년 1분기(81조원)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완화 등으로 가계 소득과 소비 흐름은 양호했으나, 부동산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영향이 이어진 이유가 크다.

올해 1분기 대출금 등 자금 조달은 -7조원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기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두드러졌다. 올해 1분기 저축성예금은 50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2조3000억원)보다 7조9000억원 늘었다. 예금 비중은 44.5%로 2012년 2분기(44.7%) 이후 11년여 만에 가장 높았다.

문혜정 한은 경제통계국 자금순환팀장은 “1분기 여유자금이 감소한 데는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2분기 이후 경상수지 흐름이 개선되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