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세상읽기]
[세상읽기]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미라로마고교의 2023년 졸업생 상장 및 장학금 수여식이었다. 청바지에 초록과 흰색이 어우러진 블라우스를 입은 티티 올로투가 강당을 가로질러 무대에 오른다. 나이지리아 국기를 닮은 전통의상이 나풀거렸다. 사회자의 소개가 박수 소리에 묻혀 낱말로 퍼졌다. 코카콜라 장학금, 2만달러, 지원자 9만명, 150명 선발, 미국을 바꿀 청소년 리더! 그리고, ‘저소득 이민자 가정’이란 단어가 잦아들던 박수를 키웠다. 가난과 고난이 찬란해질 때는 그 시간이 양분되어 예술적 성취를 이루거나, 바늘구멍을 통과할 때다. 티티는 17년의 시간을 꿰어 구슬 목걸이 하나를 목에 걸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라로마고교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있는 공립학교다. 학생들은 두 부류다. 집과 가까워 택한 다수에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랍계와 흑인이 많다. 다른 부류는 국제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이다. 이 과정은 대학 수준까지 나아가기에 학업을 평가해 선발한다. 올해 이 학교 아이비 학생 중 30여명(약 40%)이 미국 상위 20개 대학에 진학했다. 티티는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살고 아이비 과정을 이수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의예과에 진학한다.
티티는 9살에 나이지리아에서 이주한 흑인이다. 텍사스에 당도한 다음날 한 학년 높여 4학년에 들어갔다. 평가 교사의 제안이었다. 온갖 상을 도맡아 받았다. 아프리카에 대한 비아냥과 따돌림도 함께했다. 11살에 새크라멘토에 사는 이모네로 보내졌다. 식구가 더부살이하던 주인집 딸이 티티보다 2살 위인데, 여러모로 뒤처지면서 갈등이 불거져 티티의 어머니가 내린 결단이다. 중학교를 마칠 즈음 상담교사는 아이비 고등학교에 도전하자고 티티를 북돋웠다.
새벽 5시면 치안이 불안한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1시간씩 기다려 두번 갈아타고 8시 등교 시간에 맞췄다. 승용차로 30분이면 다다를 거리다. 초등 때부터 아이비 과정을 해온 동급생들의 진도를 따라가고자 5시간도 못 자는 일과를 보냈다. 다들 두세 학년 앞선 수학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티티는 경찰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갈아탈 버스의 배차가 취소되었고, 통곡하며 서 있는 14살 소녀를 경찰이 발견하였다. 상담교사에게 지각 사유를 설명했다. 교사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잠부터 제대로 자야 한다며 세 단계 수학 수업을 한꺼번에 온라인으로 따라잡도록 장학금을 끌어왔다. 외부 강의였기에 수업료를 내야 했다. 한 단계를 마치기도 허덕일 강도였지만 티티는 도달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두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가 곁으로 왔다. 15살 티티는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보태기 시작했다. 학교가 소개한 보조교사 일도 꽤 오래 했다.
코카콜라 장학금을 받는 과정에도 ‘고마운 교사’는 등장했다. 자기소개서 작성 지도뿐 아니라 본선으로 갈수록 보강해야 할 활동 증명을 도운 교사다. 성가신 서류 작업들이었다.
‘모두에게 열린 교육 기회'라는 목적으로 보면, 공립학교라 해도 ‘특별한’ 학생을 골라 제공하는 무상교육은 불완전하다. 입학 경쟁에 부모의 경제력이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특별한 학교로 옮겨진다. 그럼에도 취약한 아이들이 과외에 입시 컨설팅비 수만달러를 들이지 않고도 엇비슷한 진학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나의 특별한 학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균열을 냈다.
그런데 말이다. 티티의 성취가 아이비 교육과정에서 비롯됐을까? 교사들이 제공한 정보와 자원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교사의 관심이 시스템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바로 아이들을 믿고 이끄는 것이기에 능력을 발휘해야 했다. 자원과 권한 그리고 감시가 체계 안에서 작동하였다.
티티가 장학금을 받은 그 시상식에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파키스탄계 에이치(H)는 모범상을, 전동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 제이(J)는 개근상을 받았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는 흑인 소년 셋은 유색인종 재단의 장학금을 받았으며, 지역 여성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은 흑인인 엠(M)이 받았다. 아이비 과정 밖 학생들이다.
한 사람만 믿어주면, 한 사람이 믿어준 단 하루의 시간 위로 또 타인의 믿음의 시간이 쌓이면, 아이는 성취라는 선물을 가져온다. 믿고 지원할 수 있는 조건들이 공교육 안에서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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